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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Dec 10. 2017

기사단장 죽이기1 / 현현하는 이데아-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 이후 근 7년여 만에 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2권 이상의) 장편소설.



무수한 국내 광고에서 우리가 보아온 대로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근 40여 년 동안 쌓아온 자신만의 탑을 조금씩 깎아, 대중들에게 보여준다. '하루키 문학의 정수' 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문체와 SF 적인 장치들, 그리고 주인공 '나(일인칭)' 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을 그려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잘 읽힐뿐더러 역사의 '오점' 이 된 일본 침탈의 역사를 써내려가, 일본 내에서도 열렬한 지탄을 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예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역사에 대해 이런 소신을 밝혔다.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벗어날 방법, 숨길 방법, 그런 건 없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상대조차 인정할 만큼의 사죄'
그것 하나뿐이다.



문학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작가가 저런 말을 뱉었다거나 인지도가 낮은 작가가 했다면 바로 매장됐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늘 일본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는 부분들에 대한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잃을게 많은 일류 작가라서 일본 내에서도 줄기차게 까이는 중. 그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인정하자는 것뿐이라면 참으로 의식 있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조국이 가진 부끄러운 역사를 당당하게 입으로 내뱉고 작품 속에도 녹여내는 건 (특히 일본이라는 프라이드 덩어리인 나라에서는)쉬운 일이 아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1권 현현하는 이데아는 그냥저냥 이혼남 초상화가의 기묘한 이야기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작품을 남긴 유명한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올라가며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난징학살사건의 등장을 마주하는 작품이다.




그나저나 제목이 왜 이따구인가.



마치 중세 기사의 그것이 떠오르게끔 하는 제목은 그저 작중에 등장하는 그림 작품의 제목일 뿐이다. 많은 이들(나 포함)이 제목만 보고 하루키가 추리물이나 중세풍의 장르를 책에 담아냈을 거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부숴준다. 게다가 각 권은 두 권 모두 부제가 달려있다. 1권은 '현현하는 이데아'. 2권은 '전이하는 메타포'. 실제로 주인공 눈앞에 '현현(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 하는 그림 속의 기사단장이 등장하는 탓에 제목이 이렇게 지어진 듯하다.

소설의 주 내용은 서른여섯의 초상화가인 '주인공(나)' 이 아내에게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아, 6년의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 의 도움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 화가인 '아마다 도모히코' 가 살던 산속의 별장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아마다 도모히코의 화집에 실려있지 않은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의 숨겨졌던(?) 그림을 별장 다락에서 발견하는 주인공. 한편 주인공이 거주하는 별장 맞은편의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수완 좋은)'멘시키 와타루' 가 주인공을 찾아와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문득 밤마다 들려오는 희미한 방울소리를 쫓는 주인공은 이내 자신이 거주하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별장 근처에 인위적으로 지어진 돌무덤 속을 멘시키의 도움으로 파내게 되고 소리의 근원이었던 작은 '방울' 을 도모히코의 아틀리에로 가져오게 된다. 이윽고 등장하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 그는 자신이 '이데아(관념)' 라고 주인공에게 설명한다.



한 번에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루키는 뜸을 들여 이야기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유난히 호흡이 너무 길다. 무라카미 하루키 답지 않달까. 아니, 그답긴 한데 전개가 너무 지지부진하다. 책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분량 때문에 두 권으로 나눠 낸 느낌. 어떤 사건(멘시키가 돌무덤 속에서 겪었던 일)이 생기면 독자로 하여금 '계속 궁금해 해 봐' 하며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리고 뒤에서 조금, 찔끔씩 언급하는 식이다. 이야기가 조금 나아갈 즈음 되면 다른 이야기(주인공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 를 꺼내고 화제를 돌린다. 자꾸만. 그래서 읽는 내내 답답함을 호소하게 된다. 멘시키나 나른 등장인물들을 채근해 '어서 그 이야기를 하라고!'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계속 맴돈다. 특히 하루키가 주변 사물이나 등장인물들의 묘사를 할 때 디테일하다 못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마저 표현할 것 같은 집요한 문체는 세월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작품 감상에 꽤 방해가 되고 읽다가 지치게 만들기 일쑤다(기사단장 죽이기 1권은 내가 이 책을 읽던 후반에 일을 다시 시작한 덕에 아무리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한들 4개월이나 걸렸다).



준 포르노와 모험물에 가까웠던 1Q84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분위기.


일찍이 '섹스' 는 소설에 있어서 '오락' 에 불과하다고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는 이야기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세계관의 시작이자 끝인 '노르웨이 숲(상실의 시대)' 에서부터 줄창 섹스 이야기만 해대던 하루키는 (2권 이상의 장편으로서의)전작 '1Q84' 에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건드리며 '금기를 깼다' 는 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어떤 타당성을 부여하든 미성년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면 안 된다는 주의라서 읽는 내내 참으로 불편했지만 그걸 빼면 1Q84가 지닌 장르적 묘미는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를 정도로 훌륭한 어드벤처물이라 지금도 맨 마지막 장면(반전되어 있는 광고판의 호랑이) 이 어른거릴 정도다. 거기에 비해 이번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는 다시 예전의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자신을 '이데아' 라고 소개하는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속 '기사단장' 의 등장은 하루키 문학 특유의 SF적 요소지만 큰 '사건' 이라기 보다 '그냥 원래 거기에 있던 것' 으로 치부되고, 불현듯 주인공을 찾아와 묘한 인상을 풍기는 멘시키라는 사내는 음울하고 음험한 대사와 부탁을 주인공에게 하나 둘 건네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하루키의 묘사가 탁월하다고 할 수밖에) 덕분에 오히려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같은 느낌이 든다. 

기사단장 죽이기 1권 현현하는 이데아는 그렇게 우울하지도 어둡지도, 그렇다고 5월의 햇살만큼이나 밝다고도 할 수 없는 소설이다. 이미 주인공이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은 후의 이야기이고 그는 언제나 무력하고 미래가 없는 듯 살아가지만 주위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의 단물 쓴물을 다 맛보고 '이건 이래서 잘 알고 있어' 하는 시니컬함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조적이지는 않은. 아무래도 주인공이 가장 이질적인 인간임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소설에서도 1Q84와 마찬가지로 멘시키의 제안에 의해 미성년자 소녀(아키가와 마리에)가 한 명 등장한다(1권 후반에 제대로 등장하는 터라 2권에선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중학생인 주제에 등장부터 주인공과 아무 거리낌 없이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페도필리아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기사단장 죽이기 2권 전이하는 메타포를 마저 읽으면 될 일이다(주인공의 죽은 동생, 고미와 마리에의 나이가 같다고 자꾸 언급한다).


일인칭으로 시작해, 삼인칭을 지나 다시 일인칭으로.


문학동네에서 기사단장 죽이기 1, 2권을 구입할 때 보너스로 끼워준 '기사단장 죽이기 비하인드 북' 에 하루키가 밝힌 인터뷰를 발췌한다.

"작가생활 초기에는 쭉 일인칭을 써오다가 조금씩 삼인칭으로 옮겨갔습니다 '1Q84' 를 순수한 삼인칭으로 완성해내고 다시 한 번 일인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죠. 원래의 필드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일종의 성숙함을 더했다고 봅니다."

"기묘한 어감에 이끌렸습니다. 가장 먼저 구상한 것은 그 제목(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인 '기사단장') 과, (주인공이) 오다와라 산 위에 산다는 설정. 화가라는 설정은 쓰는 도중에 떠올랐습니다."

"고전(멘시키의 도움으로 파낸 돌무덤 속에 있던 방울 - 에도 시대 작가 우에다 아키나리의 '하루사메 이야기' 에 수록된 <이세의 인연> 이라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은 것) 이란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이것저것 인용하기를 좋아하고요. 뛰어난 이야기는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도 힘이 있어 (인용은) 유용하죠."

"제 소설은 열린 결말, 즉 이야기가 오픈된 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게도 '닫힌 느낌' 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제게 하나의 새로운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란 한 나라의 집합적인 기억이니,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 잊어버리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아무 잘못된 일입니다. (역사수정주의의 움직임에는) 맞서 싸워 나가야 합니다.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이야기라는 형태로 싸워나갈 수는 있습니다.






아래는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를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










때때로 내가 미술계의 고급 창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을 발휘해 최대한 양심적으로, 정해진 공정을 빈틈없이 수행한다. 그리하여 고객을 만족시킨다. 나는 그런 재능을 타고났다. 고도로 프로페셔널하지만,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순서만 밟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마음을 담는다. 결코 싼값은 아니지만 고객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지불한다. 내가 상대하는 이들은 애초에 액수 따위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실력은 입소문으로 사람들에게 퍼진다. 덕분에 고객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스케줄은 언제나 꽉 차 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 단. 한. 조.각.도.





아내가 말했다. "되도록 빨리 이혼 수속을 밟을 테니까 따라주면 좋겠어. 나 편한 대로 하는 소리 같지만."
나는 빗줄기를 바라보길 그만두고 그녀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새삼 생각했다. 육 년을 한집에 살면서도 나는 이 여자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고. 매일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명은 아니지만, 그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지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그때 나는 나무토막을 붙들고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갈 뿐이었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었다. 죽어라 나무토막을 붙들고 있는 한 익사는 면할 수 있지만,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벌써 이 년 가까이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보다 열 살이 많고, 일이 바쁘고, 귀가 시간도 늦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영 내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그럴까. 이렇게 멋진 몸인데." 내가 말했다.
그녀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결혼한 지 십오 년이 넘었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 난 이제 신선한 맛이 없는 거지."
"내 눈엔 신선하기만 한데."
"고마워. 그런 말을 들으니 꼭 재활용이라도 되는 기분이네."
"자원 리사이클?"
"응, 그거."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위장한 축복. 모습을 바꾼 축복. 언뜻 불행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뻐할 만한 일이라는 뜻이야. blessing in disguise. 그리고 이 세상에는 당연히 그 반대도 있을 테지. 이론적으로는."





"사람은 때때로 크게 변하곤 합니다." 멘시키는 말을 이었다. "자기 스타일을 대담하게 깨뜨리고 그 잔해 속에서 힘차게 재생하기도 하지요. 아마다 도모히코 씨도 그랬어요. 젊은 시절에는 서양화를 그렸지요.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는 서양화 유망주였죠. 그런데 빈 유학을 마치고 온 후 갑자기 일본화로 전향해서 전쟁이 끝난 뒤 눈부신 성공을 거뒀고요."
멘시키가 말했다.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절대 놓쳐서는 안돼요. 세상에는 그 포인트를 붙들 수 있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다 도모히코 씨는 전자였죠."




"피임 안 해도 돼?" 그가 물었다. 그녀는 평소 피임에 무척 예민했다.
"괜찮아, 오늘은." 그녀가 귀의 귓전에 속삭였다. "당신이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녀에 얽힌 모든 것이 다른 때와 달랐다. 마치 안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인격이 갑자기 깨어나 그녀의 정신과 몸을 고스란히 차지해버린 것 같았다. 아마 오늘은 그녀에게 무슨 특별한 날인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의 몸에는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법이다.




"내가 지금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고 싶은 거야?" 그녀가 유혹하듯이 말했다.
"알고 싶어. 그에 따라서 이쪽 순서도 바뀌니까."
그녀는 입고 있는 옷을 매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성숙한 여성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옷을 몸에 걸치는가 하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그녀는 혀끝에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벗어나갔다.
"어때, 충분히 딱딱해졌어?" 그녀가 물었다.
"쇠망치처럼." 내가 말했다.
"못도 박을 수 있어?"
"물론이야."




"혹시, 요즘에 꽤 오랫동안 섹스를 안 했어?" 여자가 내게 물었다.
"몇 달 째야."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역시나." 여자가 말했다. "그런데 왜? 여자한테 그렇게 인기 없을 것 같진 않은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불쌍해라."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내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불쌍해."
불.쌍.해.라., 나는 머릿속으로 여자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이 정말로 불쌍한 인간처럼 느껴졌다. 낯선 마을, 영문 모를 장소에서, 앞뒤 사정도 모른 채, 이름조차 모르는 여자와 살을 맞대고 있다.





나는 실마리를 구하듯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여자친구의 몸을 안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리고 땀이 배어 있었다.
네.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침묵했다.
"상관이 있고말고 할 일도 아니로군. 아마다 선생은 이미 아련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옮겨가셨고, 기사단장이 상표등록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미키마우스나 포카혼타스로 나타났다가는 필시 월트 디즈니 사에서 고액의 소송을 당할 테지만, 기사단장은 그럴 염려가 없지."
그렇게 말하고 기사단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유쾌하게 웃었다.



"저는 그 그림교실 운영자인 마쓰시마 씨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입니다." 멘시키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저는 마침 그 교실의 투자자랄까, 후원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마쓰시마 씨가 중간에서 거들어주면 비교적 수월하게 말이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신의 신원이 확실하고 경력 있는 화가라는 걸 보장한다고 한마디 해주면 보호자도 아마 안심할 테지요."
이. 남.자.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그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을 예측하고 바둑의 포석처럼 하나씩 적절하게 손을 써둔 것이다. 마.침. 그렇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야., 기사단장이 귓전에 속삭였다. 두.눈. 똑.바.로. 뜨.고. 봐.두.게.나. 판.단.은. 나.중.에.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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