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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Dec 30. 2017

영화 1987 후기

박종철 부터 이한열 까지.

시신에 손만 대봐. 족친다, 내가.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쇼크사로 죽었답니다.





고문받다 대학생이 죽었는데 보도지침이 대수야? 앞 뒤 재지말고 들이박아!





몸통이 살려면 꼬리를 짤라야 된다.





-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 없다.

- 제 일이 가두고 지키는 일입니다.





이 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 비명소리가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요. 우리가 애국자 입니까?





왜 다들 가슴을 책으로 가리고 지랄이야. 가진 거 없어도 당당하게 살어, 당당하게!





김대중이, 김영삼이 간첩 만들어서 박정철 덮어버리세요.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 뭐 하려고?

- 뭐라도 해야죠.





내래 느그들 총알받이가 되갔어.





- 데모하러 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 날 같은 거 안 와요. 꿈 꾸지 말고 정신 좀 차려요.

-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종철아. 여기 남영동이야. 너 하나 죽어나가도 아무 일 안 생겨.












박종철 부터 이한열 까지.









1987년, 가장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진실 그 자체다.


전두환 정권 말, 1987년 1월에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스물두 살 '박종철(여진구)' 이라는 학생이 고문을 받다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남영동 대공분실의 '박처원(김윤석)' 치안감은 시체를 태우라 명령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환(하정우)' 검사는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부검을 지시한다. 박처원의 입김이 닿은 덕분에 부검결과, 박종철의 사망원인이 '단순 쇼크사' 로 판명되고 여전히 사건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윤상삼(이희준)' 기자는 '물고문중 질식사' 를 보도한다. 결국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박처장은 자신의 심복인 '조한경(박희순)' 반장 등을 감옥에 수감시키고, 마침 교도소에서 재야의 열사들의 전령인, '비둘기' 역할을 하던 '한재동(유해진)' 교도관이 조반장에게 전해들은 박종철의 사망원인을 결국 자신의 조카인 '연희(김태리)' 에게 전달한다는 이야기.



영화 1987은 민주화운동의 방아쇠 역할을 한 박종철 열사의 죽음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상식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가 활발하던 시기가 아니어서, TV가 아니면 세상에 진실과 대소사를 알리던 유일한 매체 역할을 한 '신문사' 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펼쳐지는데, 그시대의 신문사 사회부 기자들은, 정부가 은폐하려던 사실들을 낱낱히 파헤치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는 지식인들이요, 언론인들이었다.








이 영화는 의외로 '악당' 이 메인으로 극을 이끌고 가는 영화다.

박처장 역할을 맡은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지닌 힘과 연기력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북에서 '인민민주주의' 에 환멸을 느끼고 월남을 강행하려다 몇 번이나 북한군에게 붙잡혀 고문과 심문을 당했던 터라 '반공', '멸공' 에 특화된 인물이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불도저처럼 대학생들에게 '좌파 빨갱이' 딱지를 붙이며 잡아 쳐 넣어버리던 그도 결국 자신이 버린 조반장처럼 전두환에게 잠깐 쓰이고 쉽게 버려진다.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 라는 캐릭터 말고는 모두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다.

거짓말처럼 연희는 영화를 보고있는 우리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제는 안 저러잖아?' '좌파, 우파 그런거 나눠서 뭐해?' 라는 태도로 데모좀 그만 하라고, 대학의 만화 동화리 선배에게 볼멘소리를 하고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를 맡으면서도 '나는 아니에요!' 를 외치던 그녀는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의 사람의 시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보고 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하는 것 처럼. 딱히 '나는 열사가 될꺼야!', '전두환을 몰아내자!' 라는 슬로건 없이 그녀는 자연스레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든다.








확실히 정권이 바뀌면 이런 영화들이 막힌 하수구가 뻥- 뚫리듯이 줄줄이 쏟아진다.

특히 정권이 바뀐 초기에 그렇다. 이미 여름 특수와 정권교체 수혜를 톡톡히 입은, '택시운전사(2017)' 에서 이어받은 배턴을 연말, 1987이 받아서 그대로 밀어붙인다. 이런 영화는 가슴이 아파서, 불편해서, 정치적이어서 못 보겠다는 사람들은 전두환 그 개새끼의 말처럼, '당해보지 않아서', '지금 먹고 사는데 바빠서' 굳이 왜 봐야하느냐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정치에 신경쓰지 말고 그냥 입닥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명박-박근혜의 콜라보로 신나게 나라를 후후불어 말아먹던 시절에 '좌파배우' 로 낙인 찍힌 사람들과 그 곁에서 그들의 필모그래피들이 점차 끊겨가는 걸 입 닦고 보던 주변의 동료들은 슬금슬금 기어나와 이제 이런 영화를 대놓고 찍는다. 이명박 정권때, '나는 중립이야!' 를 외치던 셀럽들도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자 '야 이건 아니지 않냐?' 라며 유행처럼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고 모였었다. 30년 전이나 30년 후나 언론을 탄압하려들고 돈을 수백억, 수조원 해쳐먹고 대선때 내건 공약들을 날림으로 때워도 중립 중립을 외치던 치들이 깨시민이라며 정의는 승리했다며 하하호호 거린다. 이토록 냄비근성에 찌들어 있는 국민들을 윗대가리들은 얼마나 구워삶기가 쉬울까.



난 이 영화를 보고 30년 전의 대한민국에 청년으로 살고 있지 않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30년 전의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감사했다. 내가 1987년에 대학생이었다면 그 사람들 처럼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칠 수 있었을까. 예전에야 저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전두환 개새끼의 말처럼 그 개새끼한테 '당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던 일이었지만 몇 년 전에 우연찮게 들어갔던 출판사의 성향이 거의 극좌파(?)에 가까웠기에 그곳에 재직하는 동안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알게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종철의 죽음으로 당겨진 방아쇠는 이한열의 죽음에서 폭발한다.

연희가 올라간 버스 너머, 광장을 꽉 메운 대중들의 클라이막스는 그야말로 전율이다. 역사가 남긴 단 한 번의 전국민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DNA에 그렇게 새겨졌다. 등장하는줄도 모르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강동원의 극중에서의 존재 의미가 엔딩에 가서야 '아!' 하고 확인된다. 굳이 박종철과 이한열을 엮어야만 했는가 싶기도 하지만 연희를 그 사이에 집어넣음으로써 나름의 정당성과 연결고리를 공고히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꽤 그럴듯 했고 다행히 손발이 오그라들지는 않는다. 연희를 연기한 김태리라는 배우는 정식 데뷔부터 홀딱 벗어서 영 정이 안 갔는데 이제야 그녀가 좀 보이기 시작한다.









전두환 개새끼의 정권에서 시작해 서스펜스, 느와르, 로맨스, 80년대 복고 등 여러 시도를 한 영화지만 '진실' 이라는 커다란 줄기 아래에서 갈피를 아주 잘 잡을 줄 아는, 훌륭한 영화다.














+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캐스팅 비화가 꽤 많다.


우선 박처장의 보스인 치안본부장 역을 맡은 '우현' 이라는 배우는 사건당시 연세대의 운동권 학생이었다.









박처장을 연기한 김윤석은 열사가 된 박종철의 고등학교 후배다.








영화 말미에 일장 연설 장면도 등장하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은 전두환 개새끼의 오더를 받아 직접 박처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안기부장 역을 맡았다.





















++

전두환 개새끼는 왜 안 죽는 걸까? 어서 죽어서 그가 죽인 열사들과 시민들, 청년들의 품에 안겨 영원히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

(덤으로 박근혜와 최순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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