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하기 이를데 없는 소재와 그걸 1도 활용 못하는 감독이 만났을 때.
사람도 작아지게 만들고 달에도 가는 세상인데 왜 내 섬유근육통은 못 고쳐?
자연은 인내심이 강한 조각가예요.
호모 사피엔스는 곧 지구에서 멸종한다.
참신하기 이를데 없는 소재와 그걸 1도 활용 못하는 감독이 만났을 때.
우선 맷 데이먼이 나온다고 해서 관심이 있었다. 그 다음엔 무엇보다 소재였지.
영화 다운사이징은 지구를 위협하는 최악의 존재인 우리 인류가, 스스로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0.0364% 의 크기로 줄이는 실험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폴 사프라넷(맷 데이먼)' 은 10여년 째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반복되고 쪼들리는 삶에 지친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운 사이징에 참여한 동창의 모습을 직접 보고 1억원의 재산이 120억원의 가치가 되는 다운 사이징 프로그램에 참여할 결심이 선 폴. 그러나 함께 하기로 했던 아내의 배신으로 궁궐같은 집과 어마어마한 자산은 얻었지만 무력하기 짝이 없는 전화 상담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 이사한 좁은 아파트 윗층에 살고있는 '두샨(크리스토프 왈츠)' 과 가까워지면서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그게 좀 어이없다. 두샨의 집을 청소해주는 하우스 키퍼로 살아가는 '녹 란 트란(홍 차우)'. 한쪽 다리가 의족인 그녀의 다리 상태를 고쳐주게 된 폴. 알고보니 그녀는 뉴스에도 크게 나왔던 베트남의 혁명가(?) 였다. 반체제 인사로 잡혀, 다리를 잃었고 강제 다운 사이징 되어 '레저랜드' 로 강제 추방된 것. 폴은 그녀를 따라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전화 상담원 일을 그만두고 녹 란과 함께 하우스 키퍼 일을 하며 그녀의 의족을 고쳐주고 죽음이 일상이 된 그녀의 생활공간에 깊게 관여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본 세계적인 재력가인 듀샨은 그를 녹 란에게서 구출하고자 뜬금없이 노르웨이로 가는 왕복 여행을 제안하고 그걸 들은 녹 란은 폴과 듀샨을 따라 가기로 결정한다. 마침내 노르웨이에 도착한 폴과 녹 란. 그곳에는 종말론을 믿는, 다운 사이징을 처음 고안해낸 '닥터 요르겐(롤프 라스가드)' 이 이끄는 신자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곧 지구가 황폐해져 멸망할 걸 예감한 요르겐은 지하에 생활 시설을 글어모아 새로운 노아의 방주를 만들었고 폴은 이 모든게 운명같은 신의 뜻이라며 그들을 따라가려 하지만 본인이 멋대로 자아낸 운명의 갈림길에서 결국 녹 란과 함께 남는 걸 선택한다.
이게 본작의 대강의 스토리다. 인류의 생존과 지구의 안녕을 위해 36명이 만든 4년간의 비가연성 폐기물의 양이 비닐봉지 한 개 뿐이라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좋다.
하지만 그걸 풀어가다 말고 뜬금없이 운명론, 종말론이 끼어들면서 영화는 노르웨이의 멋드러진 산으로 열심히 기어올라간다.
영화는 '다운 사이징' 이라는 아이디어만 좋았을 뿐, 실제로 인류의 3%만이 허황된 미니어쳐 인생을 선택했다는 허망한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고 (영화 내에서)당장 지구가 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요르겐의 텍스트로만 설파할 뿐. 실제로는 몇 백년 뒤의 종말이라 관객들에게도 체감되지 않는 먼 훗날의 수치일 뿐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이 나빴던 건, 녹 란 트란이라는 캐릭터의 설정.
영화 속에 꼭 필요한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장한 아시아계의 이 배우는 시종 일그러진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억양의 영어로 폴과 대화를 한다. 특히 사랑을 나눴던 대목에선 폴의 저의를 묻는 질문에 '동정 떡, 사랑 떡, 친구 떡, 나랑 떡친 건 무슨 떡이었어?' 라는 아주 저급한 대사를 친다. 미국 우월주의가 뼛속까지 스며든 결과로 탄생한 최고로 저급한 캐릭터다. 그들의 눈에는 아직도 동양인들이 저렇게 비춰지나보다.
기대를 전혀 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정도로 쓰레기일 줄은 몰랐던, 2018년 상반기 최악의 졸작이다.
(앞으로 맷 데이먼이 나온다고 무작정 볼 일은 없을 듯)
+
애정하는 배우, 크리스틴 위그가 진지하게 등장하는 영화는 무조건 걸러야 한다는 명제를 잘 보여주는 영화.
SNL 출신의 그녀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캐릭터가 역시 어울린다.
(다운 사이징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눈썹도 없고 머리도 없어, 그녀 다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