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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Feb 04. 2018

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감을 잃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감을 잃어간다.



지난달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2권, 전이하는 메타포를 방금 모두 읽었다. 책의 평을 한 어떤 인간이 '하루키의 베스트 앨범' 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인걸 기사단장 죽이기 1권 광고에서 읽은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총 세 권으로 완벽한(?) 스토리텔링과 어드벤쳐급 무대를 자아냈던 '1Q84' 를 쓴 작가와 동일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사단장 죽이기에서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의 중점이 되는 판타지 요소들을 맛만 보고 다 뱉어낸다. 현현하는 이데아에 이어 제대로 등장하길 기대했던(?) 이세계의 배경은 어딘가 답답하고 음습할 뿐, 전혀 색다르다거나 신선한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하루키 월드에서 언뜻 스쳐지나갔거나 이미 봐왔던 풍경만 남기고 수증기처럼 사라지던 기사단장처럼 소설이 끝난다.




이상한 나라의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노르웨이 숲, 그리고 태엽감는 새 에서의 <우물>과,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입구의 돌>, 1Q84에 등장하는 <두개의 달>이 하루키를 상징하는 판타지적 면모를 지닌 장치들이라면, 본작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빈에서 모종의 시련을 겪었던 아마다 도모히코가 일본으로 송환되어 혼을 실어 그려낸 '기사단장 죽이기' 의 그림속에서 튀어나온 이데아인, '기사단장' 다음으로 나타난 '긴 얼굴' 을 겁박해 주인공 '나' 가 가게되는 후지산의 풍혈을 닮은 <메타포 구멍> 이 되겠다. 이미 주인공은 병으로 죽은 여동생 고미치와 함께 후지산의 풍혈을 경험한 바 있다. 그 구멍을 홀로 다녀왔던 고미치는 훗날 주인공이 그녀를 따.라.가.게.된. 모양새가 된 메타포 통로 저편에서 그가 지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존재로 치환된다. 저 세계 어딘가로 끌려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아키가와 마리에의 행방은 알고보니 그저 단순한 착각과 그녀의 호기심에 대한 발로였고 어느날 이유도 없이 아내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시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며 살아가던 주인공만 헛다리를 짚은채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확실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차용한 듯한 잡림목 속의 구덩이와 메타포 구멍은, 작가 본인도 뭐라고 규정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의 상상력을 필요로하는 장치로써 소설에 작용되는데 소설이 계속될 수록 아무 의미도 뜻도 없는 그저그런 소재로 쉬이 물러난다.

작품 초반엔 많은 걸 기대하게 만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적인 소설이지만 결국 이렇다하게 확실한 결말은 지어지지 않은, 밑을 닦다가만, 찝찝한 완결이다.

작가 스스로도 기사단장 죽이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 고 요청했을 정도로 별다른 무언가를 독자에게 요구한다거나 강하게 호소하는 작품이 아니다. 뜬금없이 꿈 속에서 전 아내를 수태시켰다고 믿는 주인공과 현실 세계에서의 주인공 아내였던 유즈가 뱃속에 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본인조차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은 주인공은 결국 그녀와 다시 결합하여(아니 애초에 서류상으론 이혼한 적이 없지만) 딸 무로를 키우며 다시 자신이 그렇게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기계적인 초상화만 양산해내는 인간' 따위로 돌아간다. 그것도 자기발로. 그 이유는 유즈를 떠나 보내며 아마다 도모히코의 옛 작업실에 8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본인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라고 스스로 답변하기에 이르르는데, 결국 그런 복잡하고 답답한 SF적인 일상들 보다 그저 한 가정의 아비가 되어 아이나 양육하는게 낫다고 여기는 주인공 '나' 의 변해버린 마음가짐 때문이다.

확실히 그런 것들(기사단장, 긴 얼굴, 메타포, 이데아, 얼굴없는 남자,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상큼한 멘시키 씨,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따위) 은 먹고 살기 팍팍한 요즘 세상에 아무 가치도, 의미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작가 본인도 이미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린 듯, '더이상의 이상한 나라로의 여행은 힘들어' 라고 소설 맨 나중에 힘 없이 말하는 것 같다.

덕분에 경쾌한 리듬이나 어딘가 음습하지만 그래도 뚫고 나가려는 주인공의 의지가 확실하게 느껴지던 이전 소설들에 비해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은 엔간해선 잘 움직이질 않고 무슨 사건이 생기면 그걸 끊임없이 반복해서 머릿속에 되뇌인다. 독자들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의 특징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주인공과 함께 되뇌야 한다. 이거 좀 짜증.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면 그에 상응하는 사람이나 사물간의 리액션이 곧바로 이어져야 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사물 묘사에만 너무 정성을 들이는 탓에 1, 2권을 모두 읽고나면 남는 거라곤 길고 긴, 영원히 끝나지 않을 풍경 묘사, 인물 묘사 말고는 별로 없다. 후반부의 뜬금없는 '믿음' 타령에 멘시키 자체가 '빌런' 이 되는 이상한 마리에의 모험,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 기사단장의 무수분의 1의 죽음이 문자 그대로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임이 드러났을 때 오는 허탈감 등이 기사단장 죽이기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들 중 역대 최악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물론 진짜 최악은 따로있지♥︎).




너무나 예민보스 스러운 일본.



앞서 리뷰했던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에서 밝혔듯이 본작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의도한 2차 세계대전과 당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약간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작품에서 '과거의 일본을 겨냥' 한 것 까지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본인이자 유학생이었던 아마다 도모히코와 20세때 징집되어 중국에서 있었던 '난징 대학살' 의 사건에 가담한 후 본국으로 돌아와 비참한 죽음을 결심한 그의 동생, 아마다 쓰구히코가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인간 개인의 정신이 얼마나 피폐해져 가는지를 설명하는 소재로써 쓰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도모히코가 빈 유학 시절 나치의 고관 암살 미수 사건에 관여한 뒤 일본 송환 후, 희대의 역작(?)인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제목의 그림을 남기고 돌연 서양화에서 일본화로 전향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걸 '나라의 치부를 팔아 소설을 쓰는 사람' 이라며 평가절하해 버렸지만 우리 입장에선 당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에 격분하는 원숭이들을 보면 초코송이만 봐도 '성희롱' 이라며 오리온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달려들 것 같은 일련의 멍청한 여자들을 보는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섹스씬은 그저 오락에 불과하다.



1Q84에 비해 정사씬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루키 소설에 꼭 등장하는 자극적인 묘사를 대폭 줄이고 인물간의 관계나 개인에 대한 표현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400자 원고지 2000매에 해당되는 분량에 꽉꽉 채워넣었다. 그래서 1권을 읽을 때 불안 불안 했던 미성년자, 아키가와 마리에에 대한 주인공의 표현과 끝날 때 까지 납작한 가슴 이야기만 나오는 그녀의 몸에 대한 표현은 거기에서 그쳐서 다행이다 싶었다(뭐가?). 하지만 '마리에가 자신의 딸일지도 모른다' 며 주인공에게 접근했던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상큼한 멘시키 씨는 결국 마리에의 호감 대신 호기심을 얻는데 성공했고 결국 그녀의 고모와 육체적 관계를 맺는 무.척.친.밀.한. 관.계. 로 발전해 나가며 퇴장한다.

하지만 정말 일본의 여중생-여고생 들은 그렇게나 가슴에 민감할지 의문이 드는 지점. 작가 본인의 성적 취향이 미성년자로 바뀐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쓸데없고 너무 디테일하게 가슴 이야기가 왕왕 등장한다. '이 얘기를 굳이 지금 왜?'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무튼 간만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 두 권이었는데 생각보다 남는건 굉장히 적어, 시간낭비 돈 낭비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하루키에게 너무나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후련한 결말이 아니라서 더 껄끄러운 소설이 됐다. 확실하게 설명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이 끝난채. 작가 본인도 대충 설정하는 걸 이제 즐기는 듯.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중에 아마도 등장인물의 외형이나 생활 습관 같은 표현이 너무나 디테일하고 쓸데없이 길기 때문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우선 이데아인 기사단장은 만화 원피스에 등장한 하늘의 신, 간 폴.


네 그럼 에넬님 오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초호화 별장에서 '자신의 친 딸일지도 모르는' 아키가와 마리에를 훔쳐보는 기괴한 풍모의 재력가 멘시키 씨는 웹툰, 프리드로우에서 주인공 한태성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교장이자 하린이의 할아버지인 구창호를 닮았다.




물론 만화 감옥학원의 마리 아빠이자 학원의 이사장도 있었지만 얘는 넘나 변태라서 자동 스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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