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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Jun 24. 2018

영화 튼튼이의 모험 후기

그만해. 이제 다른 거 하자. 내가 도와줄게.





어릴 때 부터 코치님이 우리 거둬 먹여서 그냥 한 거 아니야, 레슬링.





- 레슬링이 돈이 되냐? 너 나 처럼 살거야?

- 아버지 처럼 안 살려고 레슬링 하는 거 잖아요.





쎄이야!!!!





- 넌 말할 때 몸을 왜 움직이냐?

- 저 움직이고 있어요?





이제 내가 레슬링의 희망이 될란다.





넌 자는데 머리 안 감냐?





- 너 어디서 왔냐? 튀기냐?

- 한국사람인 거 안 보이냐 ㅅㅂㅅㄲ!!





너 시합 나가서 졌는데 '아 다시 한 번만 할게요' 할래?












당신의 야수성은 어디있는가.



전국체전 2주를 남겨놓고 레슬링부의 존폐여부가 코앞으로 닥친 와중에 단 1승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인디영화만이 지닌 매력을 200%발휘하는 영화다. 거의 모든 씬의 대사와 행동이 배우들의 애드리브에 의존하는 특이한 영화로, 배우들끼리의 오디오가 맞물리는 건 고사하고 말을 더듬대는 장면, 감정이 격해져 라면을 쏟는 장면, 날아차기를 하는데 대뜸 뒤에 행인이 지나가는 장면 등, 자칫 '사고' 로 여길만한 모든 것들이 날것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간혹 헷갈리는 영화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엔 돈도 빽도 아무것도 없는 세 명의 아이들이 나온다. 

레슬링부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듣고 코치에서 버스운전사로 직업을 바꾼 전 코치, '상규(고성완)' 를 쫓아 다시 코치직을 맡아달라고 애걸하는 '충길(김충길)'. 그의 어머니와 누나는 진작에 집을 나가버렸고 충길의 하나 남은 가족인 아버지(박원진) 는 술과 담배와 식사를 한 상에서 하는 기인이다. 재능은 1도 없지만 노력과 레슬링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국가대표급인 대풍고 유일한 레슬링 부원이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나이순) 를 고향에 보내주기 위해 학업과 레슬링을 그만두고 막노동을 시작한, '진권(백승환)'. 공부든 레슬링이든 노가다든 그는 모든게 '더럽게 힘들다'. 틈만나면 고물상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엄마도 힘들고 반말을 해대며 엄마 편만 드는 여동생도 힘들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공사장에 찾아와 레슬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함께 하자며 질척대는 충길이 바보같고 안쓰럽지만 가슴 한켠에 무언가 앙금처럼 계속 남아있는 걸 느낀다.


마지막으로 '블랙 타이거' 라는 불량써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혁준(신민재)' 은 진권의 여동생, '지혜(윤지혜)' 에게 한 눈에 반해, 뜬금없이 레슬링을 하고싶어 한다. 그는 미용실을 하는 누나(김윤정)에게 얹혀살며 형 노릇 못하는 형과 늘 투닥대지만 레슬링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얘기에 누나에게 작은 감동을 준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은 보다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특이한 영화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시나리오와 전혀 정제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특히 블랙 타이거 멤버 노랑머리가 미친듯이 연기를 잘한다), 극적인 연출, 무의미한 의미부여 없이 앞 뒤 재지않고 일직선으로만 쭉- 달려나가는 야수성을 지녔다. 포기하지 않고 무조건 노력하고 간절히 바라기만 해서도 안되는게 요즘 세상이다. 본작은 그걸 잘 집어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비관할 시간에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게 더 나은 삶이고 주변에서 그 누가 뭐라고 하던 꿈을 잃지 않고 가슴 한켠에라도 미련처럼 저장해 두어, 언제든 조금씩 그 꿈을 한 번만 꺼내서 보기만 해도, 칠흑같은 현실을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영화 제목으로 쓰인 크라잉 넛의 '튼튼이의 모험' 만큼이나 엔딩에 잠깐 등장하는 '5분 세탁' 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인디영화였다.

(곡 소개는 하단에)




고봉수 감독이 튼튼이의 모험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딱히 특별할 것도, 심지어 보잘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내 가슴속의 꿈과 야수성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영화였다. cgv 아트하우스 인스타그램에서 하도 밀어주길래 대체 뭔가 하고 극장을 찾은 거였는데 '고봉수 사단' 이라고 불리우는 배우들의 존재와 전작, '델타 보이즈' 역시 비슷한 캐스팅으로 만든 영화여서 단번에 팬이되었고 해당 작품 역시 얼른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비 때문인지 몰라도 튼튼이의 모험엔 유독 거울씬이 많이 등장한다. 상규와 충길의 버스 안 대화는 버스의 백미러로 두 명이 모두 담겼고, 혁준과 그의 형이 나누는 중국집 대화 역시 커다란 거울로 두 인물이 모두 담겨, 연기를 한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을 보는 듯, 독특한 연출로 기존 영화들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앵글을 잡아냈다. 이런 재기발랄한 감독과 배우들이 있는 이상 한국 인디영화 판은 계속 뜨거울 예정이다.


감독과 배우들이 본인들끼리 재미있어서 하는 영화작업치고는 너무 재미있고, 가슴속의 무언가를 상영시간 내내 계속 꿈틀거리게 만들었던 튼튼이의 모험이었다.


























+

영화의 제목이자 메인 테마곡인 크라잉 넛의 '튼튼이의 모험'.







그리고 나도 애정하는 크라잉 넛의 '5분 세탁'.







이 노래를 참 힘들때 들어서 힘이 많이 됐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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