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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Jul 15. 2018

영화 킬링 디어 후기

요르고스 란티모스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렇게 될 줄 아셨잖아요.





이 지옥에서 구해줘.




내 생각에 가장 논리적인 결론은 아이들 중 하나를 죽이는 거예요. 아이는 또 가질 수 있으니까.













요르고스 란티모스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성공한 외과의사인 '스티븐 머피(콜린 파렐)' 가 지은 죄로 한 가정이 서서히 몰락해 간다는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복수극인 줄로만 알았다. 한국어로 변형된 제목, '킬링 디어(사슴 죽이기)' 덕분에. 원제는 '성스러운 사슴을 죽이다(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이고 종교적인 색채와 고대 그리스의 희곡, '이피게네이아(iphigenia)' 를 모티프로 만든 영화다. 현세에 현현하는 신이 등장하고 그에게 공포감을 넘어, 경외감까지 체감하는 한 가정을 그렸다. 


영화의 정보나 예고편 하나 보지 않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콜린 파렐이 '더 랍스터(2015)' 이후로 다시 뭉쳐 작업을 했다는 거 하나로 고른 영화다. 실수로 주인공이 죽인 사슴 때문에 뭔가 끔찍한(?) 일을 겪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정 반대로 영화는 기묘하고 의뭉스러운 것들 투성이인채 끝이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수술씬,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한 소년, 스티븐의 가정에 파고들어 한 명 두 명 희생양을 만들고 싶어하는 소년의 태도,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가 저지른 죄 덕분에 하루하루 죽어만 가는 아들과 딸, 아이들은 다시 낳을 수 있으니 둘 중 하나를 죽여버리자는 스티븐의 아내 등 부조리와 모호함의 경계를 갈지자로 걸으며 참혹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로 영화를 풀어냈다.


마치 온 가족이 저주에 걸린 것 같은 '에이 설마' 를 온전히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 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과학적 입증이 필요했다. 결국 스티븐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가족들 중(아내 포함) 한 사람을 죽이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그 과정을 '블라인드 러시안 룰렛게임' 으로 정하며 속죄양을 솎아낸다.



더 랍스터에서 요르고스 감독이 보여준 블랙 코미디의 정수는 온데간데 없고 시답잖은 기독교적 코드들과 이피게네이아의 소스를 적절히 짜와서 이런 괴작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플롯을 지닌 영화들을 굉장히 혐오하는 편인데(최근 이창동 감독의 '버닝' 같은), 관객에게 기분나쁜 감상을 전해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얼마나 영화적 미학(?) 으로 스크린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명작, 졸작, 거장 등으로 나뉘는 것 같은데 카메라 무빙이나 감정이 거세된 등장인물의 표현은 아주 칭찬할 만 하다. 미스테리한 인물인 '마틴(배리 케오간)' 의 캐릭터 역시 그러하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서늘한 대사표현, 절대 미소조차 짓지 않는 일상생활 등 모든게 간결하고 몹시 차갑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시원하게 마틴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는 감독의 연출력(각본까지 씀) 과 스티븐이 대체 왜 저래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의 부재는 기분나쁜 감상과 더불어 감독의 역량마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런식으로 만든 영화가 '예술' 이라는 영화적 성취감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정말 개나소나 영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를 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유명성' 일 테니까(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대중은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캐릭터들간의 감정선, 귀에 거슬리는 괴팍하고 기괴한 사운드, 미스테리한 신에 대한 경외감과 공포감, 모든게 좋았지만 불친절함 하나로 영화 감상을 망쳐놓은 수상한 괴작. 좀 더 친절하기만 했다면 나에게 마스터피스가 됐을법한 영화다.






속죄양이자 희생양을 고르는 방식이 꼴랑 러시안 룰렛이라니. 진짜 얼척이 없어서 웃었음.















+

이피게네이아의 내용은 이렇다.


성스러운 사슴을 죽여, 여신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산,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위해 신탁대로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 를 제물로 바치지만, 그녀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 여신은 마지막 순간에 제물을 사슴으로 바꾼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걸 관객들이 왜 알고 있어야 하냐고.



영화에선 제물을 바꿔치기 해 주는 아르테미스 같은 여신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왜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가족들의 피로 대신 씻어야 할까? 인간이 지닌 무심함과 부조리, 이기주의, 불합리 등을 이야기하고 픈 영화인건 백번 알겠는데 소스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툭하면 만만한게 기독교 교리고 그리스 신화냐?

























++

스티븐에게 지은 죄를 값는 방법 중 하나인(?) 자신의 엄마와 관계를 가지라는 지시에 등장한 마틴의 엄마는 어디서 봤나 했더니 알리시아 실버스톤이었다.






클루리스(1995) 와 배트걸(배트맨과 로빈-1997-)로 일약 섹시 스타 반열에 올랐던 그녀가 이런 대사도 별로 없는 작품에 나올줄은...







(배트맨과 로빈의 수트엔 젖꼭지가 표현되어 있는데 왜 배트걸의 수트는 밋밋한가여)







그나저나 스티븐이 그녀와 자지는 않았어도 그녀가 만든 타르트를 먹고 귀가했다면 죄가 좀 사해 졌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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