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버닝 때문이다.
반딧불이 - 무라카미 하루키 : 네이버 블로그
반딧불이
반딧불이
헛간을 태우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춤추는 난쟁이
세 가지의 독일 환상
비 오는 날의 여자 #241 #242
작가의 말 - 내 작품을 말한다
이게 다 버닝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의 개졸작, 버닝(2018)을 본 뒤 원작 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거라고 해서 냉큼 구입해서 본 하루키의 단편집. 나는 뭐랄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일본 작가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데, 단편집은 되도록 구입해서 읽지 않는 편이다. 재미도 없을 뿐더러 옛날 작품들은 정말 어설프고 허접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기 때문(과거 단편집들이 해당되고 근작들은 아직 안 읽어봐서 무효).
아무튼 버닝의 원작 '헛간을 태우다' 를 가장 먼저 읽었고 나머지 작품들은 지독하게도 재미가 없어서 3개월이나 걸려서 읽은 책이다(페이지 수가 218쪽 밖에 되지 않는 초소형 단편집인데도). 책의 전체적인 감상은 이런 하루키가 있었기에 지금의 하루키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과 예전에 하루키를 읽었다면 분명 요즘까지 그를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했으리라 라는 감상.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나도 쓸 수 있을 작품들의 향연이다(NO DISS!!). 무슨 소리를 하는지 1도 모르겠는 작품들과 단편이기에 소스만 슬쩍 흘리는 수준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런 감상이니 필립 k. 딕이 단편집에서 펼치는 sf적 기-승-전-결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꼈다. 앞으로도 하루키의 옛 단편집은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을 듯.
영화 버닝과 비교해 본다면 버닝 리뷰에도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버닝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쓴 이창동과 여류작가가 여기에 실려있는 하루키의 '작가의 말' 을 참고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한게 확실할 정도로 영화와 원작의 엔딩, 디테일한 플롯이 많이 다르다. 하루키는 분명히 본인이 직접 쓴 '헛간을 태우다' 해설 글에 '섬뜩한 소설' 이라고 했고 원작의 내용은 전혀 그런게 없다. 스스로가 밝혔듯이 각색을 굉장히 많이 한 작품이기 때문. 이 텍스트 하나만으로 벤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을 연출한 듯. 영화가 졸작인데 어벤져스 탓하던 감독의 언행을 보고 아마 다시는 이창동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일은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반딧불이
하루키 스스로 밝혔듯,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 을 위한 데모 버젼의 작품. 상실의 시대의 장면이 그대로 연출되며 '죽음' 과 주인공 '나' 의 사색이 주를 이루는 단편소설이다. 이미 상실의 시대를 읽은 인간이라 별다른 감흥은 없다. 마치 이미 봤던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느낌.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반딧불이 29p
헛간을 태우다
하루키의 단편집을 사서 읽는 인간은 아니지만 이 작품 하나 때문에(그리고 그놈의 버닝 덕분에) 이 책을 사게한 작품. 단편이지만 한국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는 구성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주인공은 유부남이고 여자는 주인공과 굉장한 나이차가 난다. 그리고 그녀가 북아프리카에서 데려온 그녀의 남자는 남자친구라는 설정이다. 영화의 엔딩 직전처럼 모호함만 주고 끝난다. 여자의 새 애인이 그녀를 죽였는지, 그가 태운다는 헛간은 사람인지 진짜 헛간인지, 밝혀지지 않은채. 차라리 이런 엔딩이 낫다. 어줍잖은 증거도 없이 오직 '감' 만으로 여자의 새 애인을 죽이는 한국의 버닝은 정말이지 쓰레기야.
꼭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청년들.
- 헛간을 태우다 59p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버드나무와 잠을 자는 여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버드나무, 자는 여자 라는 식의 제목이다. 형과 사촌동생만 등장하는 이 소설은 제목만 보면 매우 환상적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별 내용이 없다. 이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반딧불이' 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과 매우 흡사한 느낌이다.
잃어버린 경험이 없는 인간에게 잃어버린 것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85p
춤추는 난쟁이
마치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 벌어지는 듯한 배경의 소설. 주인공이 꿈을 꾸면 난쟁이가 나타나 춤을 춘다. 주인공은 코끼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인물이고 '황제', '혁명' 등이 등장하는걸로 보아 마치 15세기 유럽 등지의 배경 스럽다. 초반의 지루한 부분을 넘기면 하이라이트가 등장하자마자 뜬금없이 끝나버리는데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과 섹스를 하기 위해 누워있다가 변하는 부분이 무척 기묘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을 훔쳐내려는 난쟁이 역시 하루키 스럽고. 추후 그의 장편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듯한 장치들이 많은 소설.
한참을 보고 있자니 마치 꿈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머리는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
만약 내가 하나의 꿈을 위해 다른 꿈을 이용하고 있는 거라면, 진
정한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춤추는 난쟁이 165p
세 가지의 독일 환상
확실히 본작의 페이지 수를 채우기 위해 하루키가 무리하게 넣은 작품(?). 뭔가 좀 있어보일 듯한 제목이지만 정말 아무 의미도, 재미도, 남는 것도 없는 괴작이다. 이런 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와 정말 개나소나 소설가겠지. 하루키 스스로도 독일 취재 때 독일 여기저기에서 받은 감상을 이런식으로 풀어 쓴 걸 잡지에 기고하고, 그 글을 이 단편집에 넣었다고 밝혔다. 하루키의 여행기도 절대로 읽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
비오는 날의 여자 #241 #242
제목에서 느껴지는 '상실의 시대' 의 쌍둥이가 등장하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역시 별로 감흥도 없는, 재미없는 작품이다.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 여자로 시작해, 실종된 여자에 대해 서술한 텍스트.
세상에 얼마나 많은 행방불명자가 있는지 선생님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하고 담당 경찰은 내게 말했다.
날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사라져요.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다니까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사라져가요.
이런 문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비 오는 날의 여자 #241 #242 2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