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에필로그
훗날, 지난 여섯 달의 시간이 후회할 사건이자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이 저의 발목을 잡을 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더 큰 화를 피하고, 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지금 당장은 전역 없는 군대 휴가 복귀하는 마음처럼, 마음이 먹먹합니다. 소중하게 얻어낸 지난 여섯 달을 과연 나는 잘 보내었는지, 그리고 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의 주인은 과연 제가 맞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겠지요. 시간을 들여 치유를 해야 하도록 저를 몰아붙인 것이 비단 외부세계만은 아니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과 다가올 날로 삶의 시선을 수없이 바꿔가며 시간을 보낸 저에게 제 무의식이 보낸 메세지가 휴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섯 달이 끝나고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당분간은 지난 여섯 달 동안의 기억과 그 삶의 연장만을 생각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직장 내 스트레스로 마음의 병을 진단받고, 약을 먹으며 버텼음에도 그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여섯 달 동안의 병휴를 가졌어요. 채울 것이 있는 여섯 달은 충분히 긴 시간이겠지만, 그동안 직장을 다니며 해왔던 업무를 완전히 덜어내고, 그 공간에 채울 것을 찾아 나서기에는 여섯 달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일 먼저 했었어야 했던 것은 상기되고 불안한 마음이 여섯 달 동안 지내게 될, "떠남"과 "머묾"이라는 컨셉 사이에서 골디락스 지역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회사를 다닐 때 갖지 못했던 것이었고, 지금 아니면 갖기 힘든 기회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지친 제 몸과 마음은 일탈과 변화가 불편했었어요. 제가 원했던 것은 정착과 안정이라는 가치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여섯 달을 채우고자 했었던 저의 삶을 수확하고 나니, 여섯 달 전 노트에 적었던 것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1.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정리하지 못한 각종 사진들 정리하기
2. 블로그 만들어서 글 써보며 생각하기
3. 산악자전거 다시 타보기
4. 요가하기
5. 백패킹 해보기
6. 제주도 대중교통으로 다녀보기
7. 엄마와 모두와 시간을 보내보기
8. 일출 보기
9. 브런치스토리에 글 써보기
10. 인스타그램에 빅뱅이론 릴스 올리기
정도가 제가 여섯 달 동안 수확했던 것이더라구요. 누군가에겐 여섯 달 동안 저것밖에 하지 못했냐는 생각이 들만한 적은 수확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모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들이었으니,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짜내어 썼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일부 활동들은 동호회나 모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회성 동행은 잦았으나, 정기적인 만남과 적당한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네요.
앞으로 삶의 여백에 무엇을 채우며 살아갈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無)에서 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여섯 달이 수율이 그렇게까지 낮은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짧고 길었던 병휴를 끝내고, 상기되었던 마음을 어느정도 가라앉히며 뒷걸음질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갑니다, 아직 그 벌판으로 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응원하면서요.
11. 여섯 달 동안의 나의 휴직이야기에 대한 책 브런치스토리에 써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