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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너는 고향이 어디야?

1화. 프롤로그

by Cafe du Monde
출처 : Pixabay

19세기 초, 인류는 증기기관을 발명하였다. 증기기관을 통해 인류는 드디어 열에너지를 동력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의 발명을 1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증기기관차는 1차 산업혁명을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얼굴에 검댕을 잔뜩 묻힌 일꾼 두 명이 열심히 석탄을 아궁이로 밀어 넣으면, 그 석탄은 불이 붙어 연소를 시작하고, 그 열기가 물을 끓인다. 끓여진 물은 증기가 되어 부피가 늘어나고, 부피가 늘어난 증기는 높은 압력을 만들며, 그 압력이 "엔진"이라는 장치의 피스톤을 밀게 되면, 비로소 둥근 바퀴가 굴러가게 되는 방식으로 제작된 기계가 증기기관차이다. 그전까지 사람이나 동물의 힘이나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둥근 바퀴를 회전시키며 수 백 년을 살아온 인류에게, 더 이상 그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대단한 기술적인 혁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전까지 사람이나 동물,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얻었던 동력보다 수 십배, 수 백배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파생기술들이 구현되었다. 만약, 지구를 감시하던 외계인이 있는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면, "이게 머선일이고!"할 법 한 변화이자 발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 후세에 2차 산업혁명이라 불릴만한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인다. 자연에는 자장(자석의 성질)을 가진 물질(예 : 자철석)들이 있는데, 구리선 코일과 자장이 만나게 될 때 순간적으로 전자가 이동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전기를 발견한 것이다. 19세기 초반에 발명된 증기기관은 바퀴를 강하고 빠르게 돌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바퀴에 구리선 코일을 감고, 자성을 가진 물질을 고정시켜 놓은 다음, 증기기관을 작동시켜 구리선 코일이 감긴 바퀴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구리선 코일과 고정시켜 놓은 자장이 1초에도 여러 번 만나게 되니, 전자도 여러 번 이동하게 되어 연속적인 전기를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 것이 최초의 발전기의 모습이자, 2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라 우리는 평가한다.


출처 : Pixabay




오늘날 전기는 공기와 같다. 공기가 없으면 생명이 살 수가 없듯, 전기가 없으면 생명들의 세상이 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전기의 존재를 특별하게 느끼지 않고, 부재에 숨 막혀한다. 옷을 살 때는 재질과 디자인, 브랜드 등을 꼼꼼히 비교하고 따지며, 식재료를 살 때는 그 품질을 꼼꼼히 확인하지만, 스위치를 켜면 들어오는 전기는 어디에서 왔는지, 그 품질은 어떤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2차 산업혁명 이래로 전기는 사람들의 삶에 점점 깊숙이 스며들어, 공기처럼 흔하고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공기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는 달리, 전기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말이다.



전기는 자연이 아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에도 사실 브랜드가 있고, 품질이란 것이 존재한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면, 전기의 품질을 평가함에 있어, 안정성(Stability, 전력의 공급과 소비의 균형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정도)이라는 요소가 있다. 안정적이지 않아서 고품질의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전력산업을 가진 국가들은 반도체와 같이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생산로봇이 일정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려면, 그 로봇에 공급되는 전기 역시 일정하고 정확한 품질로 공급되어야 하고, 품질에 대한 기대수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부단히도 애를 쓴다, 공기를 만듦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전기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기생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것이 산업의 전반을 이해함에 있기에 장점이 될 때가 많다고 한다, 물론 한 군데 정붙이고 지내지 못했던 것이 단점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생산 및 정비분야에서도 근무를 해 보았고, 정부 대관업무도 해 보았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잠시나마 학계에도 몸담아 보았고, 운이 좋아 국제기구에서 에너지에 관련된 연구를 해 보기도 하였다. 전력산업을 관장하는 정부부처를 상대하는 업무도 해보았고, 매번 바뀌는 정권의 리더십에 대응하는 업무도 잠시나마 해보았다. 다른 나라 연구소에서도 근무를 해 보면서, 그 나라의 전력산업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운이 좋게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기회사가 속해있는 전력산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역사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심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내용들이 복잡하거나 대단히 어렵지 않다. 인터넷이 많은 정보를 가져다주고, 컴퓨터가 그 정보들을 다 소화해 내며, 심지어 AI가 사람을 대체하기도 하는 세상에서, 전력산업은 이제 상대적으로 단순한 재래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보다는" 단순하지 않은 전기에 대해,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경험들과 지식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방식대로 써 보고자 한다, 한 분야에서 권위 있는 Specialist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경험 있는 Generalist로서 말이다.


그리고, 전력산업이나 에너지에 대한 각종 편견과 고정관념이 우리사회에 존재한다면, 그것들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는 마음을 조심스레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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