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무서운 아빠, 그리고 다시 찾아온 교감의 시간

by 리얼팔

딸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직전, 서프라이즈 선물로 휴대폰을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제쯤 휴대폰을 사주는 것이 좋을지, 이 문제는 제게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이자 고민거리였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들도 들어보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기도 했지만 딱히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의 학교생활과 학원 등에서 휴대폰을 활용한 학습이 점점 늘어나고,

딸이 그럴 때마다 다른 아이의 휴대폰을 빌려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제는 사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학년이 되기 하루 전, 선물처럼 휴대폰을 딸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딸이 휴대폰을 가지게 되자 세 살 아래 아들은 그게 여간 부러운 게 아닌 눈치였습니다.

평소에 과자나 선물처럼 뭔가를 사줄 땐 항상 공평하게 주어야 했는데, 휴대폰만큼은 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들은 자기도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9살이라는 나이지만, 누나가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5학년이 되어서야 휴대폰을 갖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딸에게 휴대폰을 사줄 땐 몇 가지 규칙을 정했고, 이를 어길 경우엔 일정 기간 사용 금지나 압수까지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처음엔 잘 지켜졌고, 벌칙도 스스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1개월, 6개월, 1년이 흐르자 그 규칙들은 점점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한 번씩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강하게 나서면 잠깐 반짝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고, 결국 아내에게 “왜 휴대폰을 사줘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며 핀잔을 듣는 날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겐 휴대폰을 최대한 늦게 사줘야겠다고 다짐했지요.

하지만 아들이 3학년을 지나 4학년이 되자, 은근히 작전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학원을 마치고도 정해진 시간에 집이나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아내는 노심초사하며 친구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곤 했습니다. 하루는 너무 늦게까지 연락이 안 되어 아내가 울먹이며 저에게 전화를 해올 정도였고, 결국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진원이 전화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우리 아들에게도 4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기를 사주게 되었습니다.

딸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약간의 뇌물과 설득으로 잘 무마했습니다.


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대폰을 사줄 때 규칙을 정했고 다짐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점점 흐려졌고 잘 지켜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조금 더 심각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안절부절못하거나 짜증을 내는 등 약간 중독 증세까지 보였으니까요.

중학생이 된 딸은 이제 휴대폰 사용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고, 아들 역시 규칙은 있으나 거의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내의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요.

물론 아이들에게 휴대폰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 아이들의 경우, 그 사용 정도가 너무 심해졌습니다. 아들은 공부에 방해가 될 정도였고, 딸은 휴대폰을 통해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것이 학업에 큰 방해가 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부목사님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휴대폰의 폐해에 대해 많이 들어온 터라, 저는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왔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엊그제는 제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 성격까지 날카로워지고, 남매 간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고성이 오가는 싸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도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모습에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앞으로 이런 모습을 아빠한테 보이면 아빠가 특단의 조치를 취할 거야.”

하지만 아이들은 제 말을 무시해버렸고, 저는 그 태도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유지해왔던 자상한 아빠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무서운 아빠’로 돌변해 아이들의 휴대폰을 모두 압수해버렸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왜 가져가요?” 하고 반발했을 아이들이었지만, 제 완전히 다른 모습에 아이들은 눈치만 볼 뿐 말 한 마디 못하더군요.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다시 아이들에게 휴대폰 사용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휴대폰 사용은 시간제야. 한 시간 쓰고 싶으면, 한 시간 책을 읽던지, 공부를 하던지, 하브루타를 하던지 해야 해. 수요예배나 가정예배 시간도 인정해줄게.”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다시 휴대폰을 압수했습니다. 어제의 ‘무서운 아빠’가 아님을 눈치 챈 딸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이를 지켜본 아들은 눈치 빠르게 자진 반납을 하더군요.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딸은 그동안 한 번도 읽지 않던 Why 시리즈와 Who 책을 읽기 시작했고, 아들은 자기 방에서 레고 조각들로 비행선과 배, 자동차를 만들어 저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더니 일본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히라가나 첫 다섯 글자, '아・이・우・에・오'를 가르쳐주었더니 너무너무 즐거워했습니다.

“진원아, 아빠랑 일본어 공부하니까 재미있지?”

“아빠, 저 원래 일본어 배우고 싶었어요~”

“거봐, 생각은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잖아. 그런데 휴대폰을 안 쓰니까, 그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잖아.”

때로는, 정말 때로는 ‘무서운 아빠’로 돌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무서운 아빠가 되어 휴대폰을 압수하고 보니,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아이들과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깊고 친밀하게 바뀌었습니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