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익숙했던 수영장이 삼 개월간의 긴 단장을 시작했습니다. 열 걸음 더 나아가야 닿는 새로운 물에서 헤엄치게 된 요즘, 낯선 환경 탓인지 아침마다 샘솟던 생각의 물줄기가 한동안 잠잠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아침, 새로운 깨달음이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을 설계하는 일, 곧 계획에 대한 사유였습니다.
삶의 스케치, 계획의 본질
계획의 중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일상에 적용하려 하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저 또한 체계적인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누군가는 주간, 월간, 연간, 심지어 십 년 계획과 인생 목표까지 세우며 살아간다지만, 저는 순간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걸어왔습니다. 물론 그런 삶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오늘 아침 저는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혜를 자녀들에게 미리 전해준다면 그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계획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계획을 스케치에 비유해 봅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완성된 모습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무엇을 먼저 그릴지 대략적인 스케치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스케치 없이 그림을 그린다면 균형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어색해질 수 있습니다. 초보자에게 스케치 없는 그림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계획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다'는 것은 목표이지요. 투두 리스트에 적는 업무 목록 또한 목표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계획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업무를 세부적으로 쪼개고, 분류하고, 할당하며 진척도를 관리하는 수준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다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부터 기초 공사, 그리고 그 기초 공사를 위한 세부 단계까지 촘촘히 짜여야 합니다. 제가 그동안 목표를 세우면서 계획을 세운다고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목표에서 계획으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생각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물론 목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목표 설정 또한 계획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회사의 업무를 예로 들어본다면, 하루의 업무 목표들이 모여 일주일의 목표가 되고, 한 달의 목표가 됩니다. 이것이 다시 분기, 반기, 연간 사업 계획으로 이어지면서 업무 실적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연간 사업 계획에서 월간, 주간, 일일 계획으로 내려오면서 세부적인 흐름을 만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연간 계획과 같은 큰 범주의 계획을 세울 때는 너무 구체적이지 않은 큰 스케치가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와 같이 다소 두루뭉술하게 정하는 것이 오히려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목표가 너무 명확하면 작은 틀어짐에도 전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지만, 크게 설정해두면 약간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조정하며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 계획으로 넘어가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스케치가 필요합니다. 마치 얼굴을 그릴 때 크게 윤곽을 잡은 뒤 눈, 코의 위치를 잡고, 그 다음 다시 세부적으로 묘사하듯이 말입니다. 업무 계획도 연간, 월간, 주간으로 갈수록 점차 세부적이고 디테일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몰입의 즐거움, 계획의 작은 조각들
이러한 단계들을 거쳐 하루의 세부적인 투두 리스트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계획이 시작됩니다. 투두 리스트의 한 줄짜리 업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업무를 아주 잘게 쪼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자원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지, 혹은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라면 어떤 자료를 조사하고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등을 아주 디테일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업무를 잘게 쪼개면 가장 큰 장점은 진척 현황이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열 개의 작은 태스크 중 일곱 개를 마쳤다면, 70%의 진척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업무에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치 게임을 하듯이 말이지요. 게임에 몰입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진척도와 즉각적인 피드백입니다.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더 해야 레벨업을 할 수 있는지 등을 계속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업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게 쪼개진 업무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그 진척도를 눈으로 확인하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마치 게임에서 성취감을 느끼듯이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일이나 공부, 훈련에서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게임처럼 성취도를 피드백 받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업무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 번아웃은 줄어들고, 스트레스 속에서도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미루는 습관을 넘어서는 작은 계기
업무를 미루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시작을 위한 트리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목표만 크게 바라보다 보면 '아직 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이외수 작가님도 펜만 들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데, 그 펜을 드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씀하셨지요. 엑셀 파일을 열기만 하면 업무가 술술 풀리는데, 파일을 여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마음속에 업무에 대한 부담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껄끄럽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부담 없는 트리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 '일단 얼굴부터 내밀자', '손부터 빼자', '발부터 빼자'는 식으로 작은 단계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껄끄러운 업무라도 아주 잘게 쪼개서 딱 '이것 하나만 하자'라고 생각하면 시작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렇게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술술 업무를 해나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최적의 시간에 스케치하고, 삶을 설계하다
계획을 세우는 일은 상당한 두뇌 활동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뇌의 컨디션에 따라 계획의 질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가장 머리가 맑고 컨디션이 좋을 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잠에서 깨어나 한두 시간, 혹은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뇌 활동이 가장 활발할 때라고 합니다. 직장인의 경우 출근 직후가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이 시간에는 잔잔하고 단순한 업무보다는 업무 계획을 세우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깊은 사유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계획을 통해 나온 세부적인 태스크들은 그 이후 시간에 처리하고, 큰 의사결정이 필요 없는 단순 반복 업무는 오후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면, 업무가 진척되는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끼며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동사형 목표, 무한한 가능성으로
오늘 우리는 업무 계획을 세우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지만, 비단 업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인생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와 같이 명사형으로 꿈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간 계획을 세울 때 '프로젝트 성공적인 완수'와 같이 다소 두루뭉술한 동사형을 사용했던 것처럼, 인생 목표도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될 거야'와 같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요. '나는 반듯한 사람이 될 거야',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야'와 같이 동사형으로 목표를 설정한다면 훨씬 유연하고 확장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목표를 세워 준비했는데 선생님이 되지 못하면 그 꿈은 좌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한다면, 세상에는 가르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방법이 존재합니다. 선생님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자신의 전문 지식을 나누거나,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것 모두 가르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 목표를 동사형의 큰 스케치로 그려두면, 그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며 삶을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 목표 또한 업무 계획과 마찬가지로 큰 동사형 목표에서 십 년 계획, 일 년 계획, 오늘의 계획으로 점차 세분화되어 내려옵니다. '오늘 영어 단어 열 개를 외운다'와 같은 작은 계획들이 모여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될 거야'와 같은 큰 목표를 이루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 20분을 활용해 일본어 소설을 읽는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1년 중 120번의 독서로 정량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업무 계획을 세우는 법부터 인생 계획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지에 대한 사유를 함께했습니다. 삶은 이처럼 섬세한 스케치와 꾸준한 붓질로 완성되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