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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아빠 Mar 29. 2022

게으른 아빠의 정원일기  #10

삶의 정원에서

추운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왔으니 이제부터 서서히 정원 만들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맨 처음에 할 일은 기반공사이다.

필수적으로 물과 전기가 필요하니 상수도와 전기를 연결하고 간이화장실을 설치할 생각이다.


그다음에는 재정 여건상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세컨하우스를 지어야 하는데 작은 조립식 컨테이너 하우스를 설치하는데 아내와 의견 일치를 보았다.


나는 천성이  빨리빨리 못하는 성격이고 아내는 추진력 갑인 성격이라 거침이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의견 대립이 많고 싸우기도 하지만 타고난 성격을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서로 보완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정원 부지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심 집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라서 앞으로 세컨하우스에는 꼭 필요한 물품만 비치할 생각이다.


여기까지 계획이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정원의 구획과 디자인을 설계하고 나무와 꽃의 수종 선택과 배치를 해야겠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의 놀이터 수준이 될 것이다.


처음 생각대로 정원 안에 작은 텃밭도 가꾸며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놀러 와 정원도 감상하고 함께 야외 테이블에서 밥도 먹는 자연스러운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 조금이나마 마음을 위로받고 삶이 풍성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종 후 3개월 된 비단향꽃무)

애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도 삶의 큰 그림  속에서  보면 단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벽하게 계획대로 통제된 삶이란 것이 가능할까?

그건 그렇게 될 수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교도관은 사람에 대한 통제에 익숙한 직업이다.

하지만 감옥의 완벽한 통제는 수용자의 육체적 통제가 정신의 억압으로까지 이어져 나중에 심각한 병증을 남기는 차원을 넘어 통제자인 교도관까지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통제의 부작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삶이 어떤 결말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직선적 세계관을 믿지 않는다.

어떤 단편적 방향성으로 직진하는 우주관을 부정한다.

결말이 없으니 결말을 전제로 존재하는 과정이란 것도 없다.

단지 우리 눈에 표면적으로 결말을 향해가는 과정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러한 삶은 지금 여기를 단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영원히 미래로 유예한다 .

내일로 모레로 다음으로 다음으로 다음으로  끝없이 끝없이...........

그렇게 시간과 공간에 점점 더 구속되어간다.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시간이든 경제적이든 어떤 여유가 있다 해도 본질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여유가 생기면 문득 삶이 더욱 허탈해지는 생각이 든다고 하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그럼 과정도 결말도 없으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그건 지금 이 순간순간마다 모든 방향으로 빛나는 영원과의 대화에 있을 것이다.

'순간'은 나비의 꿈처럼 영원하고 '영원'은 나비의 날갯짓 속에 깃든다.

순간과 영원은 하나의 다른 모습이다.

(정원 부지 한 켠에 서있는 산벚나무 한그루)

벚꽃이 피는 것만이 벚나무의 결말이 아니다.

겨울의 검은 수피와 앙상한 가지, 봄의 화사한 벚꽃 향기, 여름의 짙푸른 잎과 벗지 열매, 가을의 쓸쓸한 낙엽

과정과 결말이 한 몸에 숨어 계절의 순간순간 그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의 하모니를 이룬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결말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삶의 순간순간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우리아이들 자전거 처음 탄 날.  2022. 3. 11. 금)

완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고, 그토록 힘들고 불안한 미래로 뒤범벅된 그때의 추억은 왜 눈물 나게 아름다운가?

그건 그 자체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순간의 진실이 추억의 사진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과연 이 세상에 객관적인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는 걸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이 지평 위에 서있는 나에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모두 지금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밭에 나와 겨울 동안 집안에서 수경재배로 길렀던 히야신스와 튤립 구근을 꽃이 진 후에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땅에 심었다.

이제 이곳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해마다 봄이 되면 다시 사랑스런 꽃을 피울 것이다.

전에 살던 집주인이 입구에 심었던 유카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이후에 관리가 안되어 잎이 서로 뒤엉켜 썩고 꽉 차 있어 오랜만에 전지가위로 밑부분에 달린 잎을 잘라주고 잎 끝에 날카로운 가시도 제거하니 시원스럽게 보인다. 그 사이로 옆에 어린 유카 나무가 뻗어 나와 자라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사실 이 세상에서 새로운것이란 없다.

그 새로움은 처음부터 이미 있어왔던 지금 여기 자연 그대로의 순수모습일테니까.


그대 새로운것을 찾아 떠나려 하는가?

부디 그 목적지에서 새롭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만나지 말기를. ...



유카(Yucca)나무   -  DAUM 이미지
분류      현화식물문 > 백합강 > 백합목 > 용설란과 > 유카속                     
서식지      원산지에서는 바닷가 모래언덕에 자란다.                     
학명      Yucca gloriosa L.                     
국내분포      남부지방(식재)                     
해외분포      북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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