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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Apr 26. 2016

사주의 추억

단 한 번, 정확했던 사주 이야기

작년까지는 매해 사주를 보러 가곤 했다. 앞으로의 내 미래에 관해 슬쩍 엿보고 싶은 마음에 유명하다는 곳은 대부분 가본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고3 수험생 시절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홍대에 있는 사주카페를 찾아갔었다. 공부도 제대로 안 하면서 불안한 미래가 걱정이 되긴 했다. 우리가 원했던 유명한 여선생님은 출장 가서 부재중이었고, 대신 말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배정되었다. 



이 아저씨, 제대로 해주시긴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솜씨가 없으셨고, 점점 흥미를 잃은 우리들은 굳은 표정으로 아이스초코를 마셨다. 심지어 공부 의지를 불태우며 갔던 내 친구의 사주를 보시더니


넌 공부 그만두고 예체능 할 사주야.

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셨다. 오 마이 갓! 당시 열공하겠다고 전투력을 뽐내던 친구 최모양(19세)은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말도 안 된다며 어이없어했다. 게다가 내 사주를 쓱 보시더니 진학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다. 다급하게 "아저씨! 저는요? 저는 대학 어떻게 돼요?"라고 물었다. 



넌 돼. 원하는데 붙을 거야.

"네? 저는 완전 좋은 대학 가고 싶은데요?"


당황스러운 나는 일어서는 아저씨에게 계속 물었다. 나는 꿈이 큰 맨 뒷자리 잠순이었다.  A대학에 갈 거야,라고 말해 놓고 뒤에서 열심히 잠만 자는 그런 학생...


"어. 무조건 돼."


아저씨는 쿨하게 돼, 돼 만 연발하다 사라지셨다. 그분이 떠난 자리에는 아이스초코와 얼빠진 여고생 둘만 남았다. 최모양은 돈 버렸다며 기분 상해했고 나는 그게 정말일까, 하며 반신반의하며 공부했다. 



정확히 6개월 뒤, 최모양은 뜬금없이 음악인의 길을 걷겠다며 단식투쟁을 했다. 노래에 대한 적성을 찾았다고 했다. 갑자기 사주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 최모양에게 그때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담임선생님과의 진학 상담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기 초, 지망대학을 적어 내는 종이에 B 모 대학을 1순위에 적은 것이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나의 1순위' B 모 대학생이 되었다. 



그냥 얻어걸린 거잖아?라고 생각하기엔 최모양의 예체능 선언은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고, 나는 B대학 갈 성적이 안되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사주 보러 갈 때마다 그 아저씨가 생각난다. 지금은 어디에 계시려나.




어린 나이에 사주를 본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님을 알지만 요즘엔 사주카페라고 가볍게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졌고, 유난히 이십 대가 불안해서 많이 찾아갔었다. 좋은 말은 듣고 나쁜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봐서 진로상담처럼 느껴진 것일지도.. 올해부터는 미래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살아 삶을 개척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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