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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May 06. 2021

23. '당연하다'는 생각에 숨어있는 것들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다가 막히는 지점은 '당연한' 생각을 마주했을 때다

  음, 무얼 예로 들면 좋을까. 가령 우리가 얼굴에 뾰루지가 났다고 해보자. 그것도 매우 보기 싫고 흉측하게. 볼거리도 좋겠다. 볼이 띵띵 부어있다고 해볼까. 아니면 쌍꺼풀 수술을 해서 눈이 팅팅 부어있다면? 바지가 찢어져서 가랑이 사이로 자꾸 속옷이 비친다면? 잘 보이기 위해 한껏 치장하고 소개팅을 하러 가다가, 혹은 취업면접을 보러 가다가 옆구리 셔츠에 커피를 쏟아서 엉망이라면? 뱃살이 두둑하게 튀어나와있는데 꽉 끼는 티셔츠를 입어서 자꾸 옆구리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면?

  쓰다 보니 너무 많은 예를 든 거 같으니, 가장 마지막 예를 가져와보자. 여름이라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기로 했다. 한껏 멋있고 이쁘게 차려입었는데 내 뱃살과 옆구리살이 자꾸 내 셔츠 주름을 만들어내며 적나라하게 튀어나온다. 우리가 이 때 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배에 힘을 주는 일이다. 배에 긴장을 풀지 않고 있으면, 힘을 완전히 빼고 있을 때보다 뱃살이 훨씬 덜 늘어지니까. 그리고 가급적 상체를 뒤로 젖히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젖히게 되면, 뱃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테니까. 그리고 웃옷으로 살짝 가려놓기도 할 것 같다. 당신이라면 어떠한가? 나라면 그렇게 할 거 같다. 내 주위 친구들도 으레 그렇게 하는 걸 보면 꽤 보편적인 행동 아닐까 생각한다.


뱃살을 가리는 일의 힘겨움


  이렇게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태를 가리고 싶어서 어떻게든 숨겨보려는 애를 쓰려고 우리가 마음 먹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밖에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내내 어딘가 불편하고, 피곤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애를 써서 숨기고 가려야 하니까. 위의 예에서는 내 뱃살을 말이다 ㅋㅋ 여기에는 그냥 생겨먹은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남들에게 드러내기가 꺼려진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나의 두둑하고 축 쳐진 뱃살을 여러 사람들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뒤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걸까.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웃거나 외관 상 이쁘지 않다고 속으로 야유를 보내거나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단 야유를 보내거나 비웃을 것이 확실한지 여부는 뭐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람들이 배가 나왔다고 좀 비웃으면 그게 어때서 그렇게 하루종일 불편함과 그 피곤한 노력을 감수하는 것일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막히기 시작한다. 당연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날 비웃는데?


'당연하다'는 말은 모르겠다는 이야기일지도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종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왜 '당연'한지에 대해 스스로 숙고해보지 않은 우리들에게 '당연하다'는 건 위험하다. 왜 위험하냐면, 그 당연한 것들은 누군가로부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주입된 것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는 말을 뱉는 사람의 99%는 그게 왜 당연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연하다는 말이 그냥 왜 그런지 생각안해도 그걸 정당화해주는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으로 그 말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당연하다"는 말의 의미는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이다. 즉,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보는' 일을 전제로 한다. 따져보고 생각을 해본다는 의미다. 당연하다는 말이, 그렇게 그냥 왜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고(실제로는 나도 왜인지 모르고) 설명할 수도 없을 때 무작정 쉽게 갖다쓰라고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비극

  

  '당연한 거 아니야?' 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심히 불쾌하겠지만) 그 사람은 그냥 밖에서 주워들은 것을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 그대로 내면에 집어넣고 그걸 따르며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나마 이쁘게 말해서 그렇다는거다. 안타깝고 슬픈 일은, 자신이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은 매우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후회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런 사실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많은 것들을 왜곡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왜곡해야 하는 대상은 명백하다. 내 마음. 그래서 점차 그런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내 마음이 어떤지를 더욱더 모르게 된다. 어떻게든 보지 않으려고 억누르고 왜곡하고 외면하다 보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나중에는 정말로 그걸 못 보게 되기 시작한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우리는 이유는 모르지만(그래서 '당연하게도') 남들이 우릴 비웃거나 속으로 야유를 보내고 키득거리며 손가락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숨기려고 애쓴다. 가령,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축 처진 뱃살 같은 것들 말이다. 손쉽게 마지막 사례로 적어놓은 뱃살을 가리는 에피소드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 하루 24시간을 놓고 볼 때, 우리는 거의 항상 무언가 배에 힘을 주듯이 힘을 주고 긴장을 하고 그 상황에서 튀지 않고 적절하고 조화롭다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 몸과 마음 어딘가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을 한 채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남들이 혹여나 실은 내가 뱃살이 엄청난데 배에 힘을 주고 있어서 티가 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계속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쓴다. 이러한 일을 어떤 이들은 '가면을 쓴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산다. 그리고 가면이 흘러내리거나 가면 사이로 내 맨얼굴을 남들이 볼까봐 끊임없이 전전긍긍하면서 산다.

 

  이렇게 살다보면, 사는 게 가뜩이나 지치고 어려운데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남들에게 들킨 건 아닌지 계속 남들 눈치를 살피고 내가 지금 어떻게 남들 눈에 비춰지고 있을지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실제로는 이 파티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주눅이 드는 것 같은데, 이런 초라한 모습이 드러날까봐 애써 더 크게 웃고 농담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때의 나는, 파티를 즐기지도 그 시간 동안의 내 삶을 즐기지도, 내 마음이 어떤지를 살피고 그 마음에 따라 행복하게 시간을 채우지도 못한다. 그냥 어떻게든 남들에게 초라해보이지 않으려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을 흉내내고 연기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이게 비단 파티에 참석한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삶을 이 파티라고 생각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는 내내 이런다고 생각해보면 어떠한가. 어딘가 슬프고 숨막히지 않은가. 그래서 자꾸 한번씩 집에 돌아와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면, 어딘가 슬프고 숨막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끊임없이 눈치보고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살피고 남들에게 잘 팔리고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가꾸고 더 많이 가져서 남들이 보기에 더 그럴싸하도록 참고 견디고 노력하고.


가장 먼저 시도해볼만한 일은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이럴 때는 멈춰서야 한다. 절대 멈추면 안 될 거 같을 수도 있고, 이미 지쳐서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주저 앉아 있을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멈춰야 한다. 발걸음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그냥 가만히 멈춰서 숨만 쉬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왜곡과 마취제와 마비와 눈을 가리는 현혹들로 잠식되어버린 내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지금 당장 우리의 눈앞에 가져다놓아야 한다. 심오하게 들리지만, 다행히도 실제로는 간단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숨만 쉬고 있으면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거의 즉각적으로 다시 무언가 손에 잡히거나 몰두할만한 일을 찾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다못해 친구랑 통화를 하거나 설거지라도 할 걸 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정말 긴박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10분만 내어 고요함 속에 숨죽여 멈춰있어보길 권한다. 절대로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하루하루가 자꾸 남들 눈치를 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당신의 마음에 귀기울여보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가져보길 추천한다.



P.S) 이 글은 사실 '자기상담가 프로젝트'에서 내 생각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에 대해 쓰다가 끄적인 글이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파고들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막힌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런 식의 생각이 우리의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여정을 막아선다. 이 지점에서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길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 글의 시발점이었으나, 글이 점차 자기만의 길로 갔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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