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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May 07. 2021

면죄부, 내가 나를 거부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비록 이런 꼴이지만, 나 잠도 안 자고 개열심히잖아

"어제 세시간 .. 잤나?"


  나는 게으르고, 정체되어 있는 지금 내 모습을 수용하기 힘든가보다. 실패하고, 아니 실패는커녕 실패가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한 채 어물쩡거리기만 하는 내 못난 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나보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들한테도, 가족들한테도 할 게 많아서 어제도 잠을 얼마 못잤다면서 불평을 한다. 거의 입에 달고 산다. 할 게 많아서 잠을 얼마 못잤다는 이야기를. 물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그말을 꺼내진 않지만, 나의 퀭한 눈과 헝클어진 머리, 해질녘 건물 그림자처럼 길게 내려와있는 내 다크서클은 사람들이 먼저 묻게 만든다. "너 오늘 왜이리 피곤해보이냐. 어제도 밤샜냐."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듯이 말한다. "하, 나 어제 00책 좀 읽고, 운동 잠깐 하다보니 새벽 4시길래 후다닥 잤는데, 세시간 밖에 못 잤어."


핑계에 대한 갈망


  나는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던 도중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걸 불교에서 '돈오'라고 던가. 아무튼.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술 대신 잠에 취한 취객이 된 채, 잠에 휩싸여 비틀거리며 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띵, 하고 내가 허구한 날 얼마 못잤다고 말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지금 내 성에 차지 않는 '허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가 필요했다.


  나는 누가 봐도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무난한 환경에서 무난하게 자라서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한 직장에 들어와 무난하게 살고 있다.(무난이라 쓰고 모범이라 읽는 것 같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무난한 인생'을 내가 별로 탐탁치 않아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살아오면서 겪은 일련의 경험들과 시간들이 나한테 알려주었다. 나는 무난한 삶을 살기엔 너무 삐딱한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태생적 삐딱함을 저버리고 내 주위의 선한 사람들처럼 '무난하게' 살다가는 환갑을 맞이하기 전에 분통터져서 화병으로 요절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될 것이 없다. 15년 전, 20년 전과 다르게 나는 이미 나의 태생적인 삐딱함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였다. 그러면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 삶을 채워나가면 된다.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 여기서 나의 못난 짓거리가 시작된다. 아,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되는거다. 나의 겁 많고 소심한 마음이, 남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비루함과 실패할까 두려운 불안과 함께 뒤섞여 내 못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데 내 못난 마음이 드러나고 자시고, 생겨먹은 삐딱한 모습으로 내 인생도 삐딱선을 태워보자니, 너무 겁이 난다. 내 마음의 소리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눈빛과 사회의 기대(라고 쓰고 압박이라 읽는다.)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내 삐딱함은, 무난하길 기대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보다도 연약하다.


  근데 상황이 이렇다고 솔직하게 고백은 못하겠는거다. ... 쪽팔리잖아. 대신에 나는 핑계거리를 찾았다. 그 핑계가 바로, "아놔, 나 어제도 몇시간 못잤어."다. 이 말은, 내가 지금의 내 불만족스러운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니, 지금의 무난하기만 한 내 모습을 보고 날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비겁한 외침이다. 사실은, 누가 봐도 지금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인데 말이다. "아니야! 내가 지금은 비록 이렇게 빛깔도 없고 비루해도,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은거다 나는. 난 (한없이 무난하기만 한)지금보다 더 특별하고 멋진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될 거라는 오만방자함이 잔뜩 묻어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겁나 욕먹을 게 뻔하다. 게다가 그러기엔 내가 실은 뭐 하나 특출날 것도 없고 비루한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 나는 핑계를 찾은거다. 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 멋지게 변모해나갈거라고. 그 이야길 하면서, 지금의 이 모습이 정체된 채로 고여있는 것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하는거다.


  나한테 있어서 이 변명은, 일종의 면죄부다. 어제 몇시간 못잤다는 핑계는 확실히 나에게 면죄부가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면죄부는 '책임이나 죄를 없애주는 조치나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나는 지금의 비루한 내 모습을(실은 비루하다고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일종의 '죄'나 '책임져야 하는'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수단으로 '내가 매일 열심히 노력하느라 몇시간 못자는 것'을 꼽고 있다. 

비록 내가 지금은 이 꼴이지만, 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비루하지 않은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꺼야.
나 매일 잠도 거의 안 자가면서, 이렇게 노력하잖아.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다고 넌 날 비웃으면 안 돼. 알았지?


뭐 이런 오만방자하면서도, 남들이 날 비웃을까봐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변명으로 승화(?!)시켜본거다. 정리하자면.


맨날 말로만


  여기서 재밌는 건, 막상 내가 또 그렇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매일 내 인생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는 데 있다. 아니, 그렇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 이게 황당한 일인거다. 내가 잠을 몇시간 안 자는 건 사실이다. 그건 내 면죄부의 내용과 일치한다. 근데 막상 내가 그러면 자는 시간을 그렇게나 줄여야 할만큼 깨어있는 시간을 밀도있게 채우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잠을 줄여가며 기껏 한다는 일은, 그냥 좀 책도 뒤적거리다가 글도 조금씩 끄적이다가 노래도 좀 듣고 간식도 좀 먹다가 웹툰도 좀 보고 이런 식이다.


  종합해보면, 그냥 나는 남들이 날 지금의 모습만으로 판단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강한 건지도 모른다. 즉,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다는거다. 사실 멋진 사람이고 싶고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 또한 결국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문제다. 인간의 존경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결국 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던가. '자기만족'이라는 포장은, 많은 경우 기만이고 위선일 때가 많다. 거 참, 곤란한 일이다. 나는 남들의 기대와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실제로는 완전, 절어있는거지. 남들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나(=지금의 나)와, 너(=바라는 나) 사이의 거리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럴싸한 면죄부까지 만들고 싶을 정도라면, 한 번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할만큼 지금의 내 모습이 싫은걸까. 난 나에게 그렇게나 못나고 비루하고 어떻게든 외면해버리고 싶은 존재인걸까. 언제부터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던걸까.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내 현실이 그렇게도 차이가 많이 나는걸까. 내가 그렇게나,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못난걸까.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그 엄격하고 이상주의적이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기준은, 어디서 흘러왔으며 왜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에 대한 이 모든 기대들과 도전과 채찍질을 일시에 싹 다 내려놓아버리면 되는걸까. 그러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걸까.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생각들이 너무나 많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불만족스러워 한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만큼.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편을 찾다가, 하나의 면죄부를 찾아냈다. "나 잠도 몇시간 못잘만큼 되게 열심히 살아."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내가 언젠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내 모습과, 지금 이 순간의 진정한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 괴리는 나를 괴롭게 하고, 나는 끊임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지금 이 순간 여기있는 내 모습' 대신 '내가 그리고 바라고 꿈꾸는 내 모습', 즉 내가 나에 대해 기대하고 주위에서 나에 대해 기대하는 내 모습만을 마음에 품고 바라보며 갈망한다. 그 덕에 '진짜 생겨먹은 그대로의 나'는 나로부터 방치되고 외면받고 소외당한다. 나는 그런 방치와 외면과 소외를 완성하기 위해, 끔찍하기 그지없는 '진짜 생겨먹은 대로의 지금 이 순간 내 모습'이 사실은 내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면죄부를 찾는다. 허둥지둥. 어떻게든 찾아낸다. 그래서 찾은 나의 보물같은 면죄부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을 잠식해나간다. 나중에는, 진짜 내 삶의 많은 부분들도 잠식해나간다. 결국 나는 면죄부로 뒤덮여서, 진짜 내 모습이 어땠는지 이제는 거울에 비춰보아도 알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건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무얼 더 고민하게 될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얼굴을 돌릴 것인가. 혹시 이 글에 담긴 나의 치부를 보는 여러분은, 진짜 여러분과 바라는 여러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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