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을 '미디어 엘리트'라고 부른다
스마트폰 알람이 거세게 울린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람이 보도국 전체를 메운다. 곧이어 경보 알람이 울리고 소식을 접한 기자들은 곧바로 회사 내에 있는 TV를 일제히 켠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속보를 프로그램 하단에 깔고 뒤이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린다. TV 앞에 모인 기자들은 팔짱을 끼고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제주도 서남서쪽 32KM 지점, 진도 5.3 지진 발생"
전화를 하는 사람도 보이고, 다급하게 회의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정해놨던 뉴스의 소식을 바꾸고 작성했던 기상 소식의 변경을 체크한다. 지진 소식을 최소한 단신으로 내보낼지 아니면 본사가 작성한 기사를 끌고 올 것인지 의논한다. 방송사 네트워크를 통해 타 지역과 정보를 교환하고 우리가 보도할 내용의 태도와 포지션을 정한다. 큐시트가 변경되고 미리 작성한 기사와 헤드라인이 사라진다. 보도본부의 방침이 전달되고 시시각각 바뀌는 전달사항에 사람들의 신경은 곤두서 진다. 약속된 시간이 되고 다시 단정한 차림으로 소식을 전한다. 뉴스가 시작된다.
우리가 채널이라고 부르는 TV 속 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수익을 위해 움직인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광고를 내보내고 ppl을 따 와 프로그램 속에서 광고하기도 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이익으로 방송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월급을 가져간다. 카드 할부를 갚고, 월세를 내고 자녀의 양육비에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삼성과 LG, 네이버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하루 온종일 수익을 위해 움직이고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쓴다. 딱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 방송사는 공익을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알려야 할 소식과 정보를 찾고 업무 시간 내내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배치한다. 가장 알맞은 사진을 찾고 기사에는 어색함이 없는지, 문장은 문법에 맞게 작성되었는지 확인한다. 촬영된 자료들은 초상권에 어긋나지 않도록 블러 처리를 하고, 녹음 부스에 들어가 작성된 원고를 알맞은 어조로 읽는다. 여유로워 보이는 시간도 순간이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보도국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큐시트가 나오고 데스킹을 거친 헤드라인의 사인이 떨어진다. CG 작업과 편집 작업을 마친 VCR과 리포트들이 테이프에 떠지고 바삐 계단을 내려가 주조정실에 전달된다. 분장을 마친 앵커들이 스튜디오에 자리 잡고 PD의 사인을 받은 스튜디오와 주조정실의 모두가 숨을 죽이며 방송에 들어간다.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을 우린 '뉴스'라고 부른다.
괜히 폼 잡고 뉴스를 설명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난 6개월 동안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도국에는 매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들을 온전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템을 찾고 뉴스에 내보내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그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고, 가장 적확한 이미지와 영상을 위해 손이 터져라 키보드를 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는 곳이 보도국임을 체감하게 된다. 혹자는 자신의 위치와 자리가 터무니없이 하찮아 보이겠지만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삶의 하루,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 한 시간 동안 전해질 소식이 아무런 사고 없이 전해지게 된다. 카메라 앞뿐만이 아닌 카메라 뒤에서도 모두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한국 언론을 칭송하지는 않는다. 편성된 뉴스를 위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는 반면,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발 양산형 기사를 쓰는 '찌라시 언론'도 시민들 곁에는 널렸기 때문이다. 또 내가 느낀 분주함과 날카로움도 사실이 아닐 때가 왕왕 있다. 심혈을 기울인 코너와 아이템 역시 새로운 플랫폼 세상에서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때가 많고, 정보를 가질 마땅한 권리가 있는 시민을 위한 뉴스가 아닌 타 방송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단독 보도가 이어질 때도 있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헤드라인을 뽐낼 때도 있고, 보수적인 시니어들 사이에서 젊음의 패기가 잡아먹힐 때도 있다. 또 나처럼 그렇게 언론을 비판 해오던 언론학도들 역시, 현실의 업무 앞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시청률을 위한 뉴스를 제작할지언정, 보도국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다.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뉴스를 확인하는 이들을 위해 밤낮을 바꾸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재난과 기상 악화, 중대 사건 현장에도 역시나 기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은 현장과 사무실 그리고 다시 스튜디오로 거쳐 하나의 뉴스로 제작되고 이로써 사람들은 세상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들의 제작물로 때론 이번 대선에서 뽑을 사람이 없다며 혀를 차기도 하고, BTS와 손흥민의 활약에 내심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가장 하찮다고 여겨지고 비판받기 쉬운 직업임에도 본분을 다하는 이들이 버젓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며 살아간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배의 말이 기억난다.
"세상은 하나의 자동차인데, 단순히 동그라미 두 개 위에 네모 박스를 그린다고 자동차가 될까?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결과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하고 파악해야 할 게 수도 없이 많다."
하루를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질 마땅한 정보의 권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는 보도국. 실수 하나에 명예가 실추된 것 마냥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는 보도국 사람들이 있기에 어쩌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그들의 하루를 바꿔 볼 기회가 생기는 것일지 모르겠다.
p.s.
자신의 영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 역시
무언가를 성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다.
말의 형태로 수백 번도 깠던 게 우리 뉴스의 현실이기에
글의 형태로 한번쯤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더 나은 뉴스와 미디어를 향한
흔해 빠진 언론학도의 동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