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는 건 쏟아부은 노력의 기억일 테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이 유명한 고전을 읽든 안 읽든 적어도 제목은 들어봤을 테다. 며칠에 걸친 청새치와의 사투, 힘이 다 해 가는 순간에도 노인은 청새치를 놓아주지 않는다. 적절히 힘을 조절해가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청새치와의 밀당을 이어간다. 어느샌가 출발한 곳으로부터 아득히 먼바다에 머무를 무렵, 노인은 더 이상 청새치를 한낱 물고기로 보지 않는다. 이 거대한 사투를 함께 해가는 상대이자 동지로써 여긴다.
그리고 그 처절한 사투 속에서 노인은 나지막이 외친다.
"침착하게 굴어라! 그리고 더욱 힘을 내라!"
며칠 전, 친한 동생에게서 인스타 DM이 왔다.
본인이 쓴 글을 읽고 품평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품평'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간지럽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해온다는 자체가 기뻤기에 시간을 내 짧은 글 한 편을 읽었다.
제목은 '일상의 권태'였다.
군대라는 곳에서 느끼는 답답한 일상과 그 안에 덩그러니 있는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이야기는 군대라는 답답한 일상에서 나태에 빠져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글을 읽다 보니 내 군생활이 떠올랐다. ('라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나도 그랬다. 영상을 만들어보고는 싶은데 신분이 신분 인터라 무언갈 해 볼 상황도 기회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사지방'에 들어가 영상을 공부하는 방법과 루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고 유튜브에 존재하는 천재들의 멋진 영상을 감상하는 거였다. 아, 카메라에 대한 공부도 그때쯤 처음 시작했고 다뤄볼 순 없지만 편집 툴 역시 그때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카메라를 살 수도 없었고 영상을 만들 기회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늘 상상하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버텨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또다시 나태함에 젖어들곤 했다. 다 비슷한 모양으로 개인 정비 시간을 보내는데 내가 굳이 이렇게 나를 조여가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었다. 남들처럼 px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대충 놀면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곤 했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그런 마음을 지녔던 건 나 자신이면서 또 그런 나태함에 빠져있는 스스로를 볼 때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인지 전역이 다가올수록 더욱 내 앞길에 대한 멋진 청사진을 그려보곤 했다. 솔직히 터무니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전역을 앞둔 남자라면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최소한 초라하진 않을 거라는 그 상상 말이다.
하지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정말 호되게 쳐 맞았다. 지난 2년 동안 유난스럽게 굴던 내 상상과 계획은 전역을 하자마자 이리저리 까이기 일쑤였다. 우선 카메라는 왜 이리 비싼지 몇 달치 알바비를 모아야지만 살 수 있었고, 군대를 벗어나자마자 '어도비'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프리미어 프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로웠고 큰맘 먹고 지른 내 노트북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인지 종종 튕기곤 했다.
그래, 솔직히 나는 침착하지 못했다. 큰 소리 뻥뻥 치며 휴학을 하고 촬영장에서 보조로 일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못했고 오히려 무엇을 하려고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지에 대한 답도 내리지 못했다. 침착하게 방향을 설정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빠르게 어딘가로 닿고 싶어 했고 부족한 정보로 부단히 아는 척하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처맞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복학을 했고 전과를 했다. 다른 학생들이 들으면 싫을 이야기지만, 나는 전과한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너무 좋았다. 좀 재수 없지만 왜 이 재밌는 수업을 다른 학생들은 저렇게 관심이 없을까 싶기도 했다. 공부를 하고 생각이 더 풍부해졌다. 그리고 침착하고 꾸준히 내 공부를 이어가며 서툴지만 온 힘을 다해 영상을 만들어 갔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여러 시행착오가 존재하긴 했지만 내 꿈 어느 언저리쯤에서 여전히 상상해왔던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긴 항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 섬에 다다를지 모르고 언제 또 난파될지도 모른다. 또 난파된 배에서 운 좋게 구출돼 새로운 배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때론 풍랑이 불어 닥치고 때론 잔잔하기 그지없는 나날들을 보낼지도 모른다. 때때론 항해를 하면서 청새치와 같은 꿈이 찾아올 수도 있다. 역시 내가 이 청새치를 잡을지 놓칠지, 그것도 아니면 몰려드는 상어 떼에 청새치가 다 뺏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청새치를 다 놓치더라도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억은 달아나지 않는다. 모두가 내 빈손을 바라보며 비난하더라도 내 시간을 알아주는 소년이 등장할 것이고 단잠을 자고 난 후에는 또 다른 청새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생은 내게 글에 대한 품평을 해달라고 했지만, 다른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은 내게도,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도 언젠가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