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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Mar 19. 2022

이대남, 이대녀 그런 소리 좀 그만했으면

20대 대선이 끝났다.

자타공인 보수 야당으로 일컬어지던 당이 새로운 대통령을 배출했고 선거의 결과는 예상대로 초박빙이었다.

선거의 결과를 저마다 분석했다. 어떤 이는 독선을 일삼던 '내로남불'의 몰락을 좋아했고 어떤 이는 무자비한 검찰 권력의 제왕적 권력을 경계했다.

많은 결과에 대한 분석이 있었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역시 2030, 청년들의 표였다.


이번 대선에서 청년의 표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요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번 선거만큼 20대와 30대, 젊은 층을 향한 구애가 강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결과적인 면만 보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20대 남성의 표를 갈구한 보수당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20대 여성의 표를 갈구한 진보당이 있었다. 이렇게 표현하니 괜히 20대 남성은 보수를 지지하고, 20대 여성은 진보를 지지해 보이지만 나는 딱히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결과'로써 그런 표가 나온 것이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두 거대 양당의 물밑작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 20대 대선에서 젊은 층의 표심은 두 거대 양당에게 중요했을까?

비밀선거가 보장되는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이지만 그럼에도 두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지대를 지지한 소수의 청년으로써 생각해 보자면 결국 젊은 층은 민주당, 국민의힘 두 정당에게 새로운 시장이었다.


냉정히 말해서 과연 민주당, 국민의힘 두 정당이 젊은 층에게 관심이나 있었을까? 3040세대나 60대 이상, 각각 진보와 보수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세대 중, 가장 표심을 얻기 쉬운 층이 우리 20대이기에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적 가치는 다른 세대에 비해 약하지만, 또 유동성은 그만큼 강한 세대. 그게 바로 우리 20대였고 그 점이 '전략'으로써 20대를 공략하기 좋은 포인트였다.


솔직히 따져보자.

한쪽은 '정권 교체'를 외치고 다른 한쪽은 '위기 극복'을 외친다. 이게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서울로 집중된 모든 기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진취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가? 또 그렇게 파생될 수 있는 일자리가 어떻게 삶 전반에서 안정감과 장기적인 비전을 줄 수 있는가 였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당장 정권 교체가 되지 않더라도 공정한 기회를 갖고 경쟁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비전이며 코로나19 위기가 극복되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또 다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좋은 비전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그 대단한 기성 정치는 우리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

'저 인간들은 너 아닌 다른 집단을 좋아한다!' 따위의 비방과 편 가르기를 구호로 내세우며 '전략'에 집중했다. 선거가 무슨 롤이나 스타크래프트도 아니고, 20대는 그냥 이기기 위한 전략의 패로써, 하나의 말로써 밖에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더욱 20대의 표심을 갈라놓았다고 생각한다. 두 거대 양당이 서로를 물고 뜯으며 5년 주기 혹은 10년 주기로 공생하는 이 관계 속에서 조금이나마 색다른 표심을 보여줄 수 있는 활로를 사퇴로써 차단한 셈이 된 것이다. 갈 곳 잃은 20대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결국 다 마음에 안 들어도, 비전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기존 색채를 통해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맞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남, 이대녀. 솔직히 웃기다고 생각한다. 언론과 정당은 매일같이 이 용어에 꽂혀 표심의 향방에 집중했다. 그런데 당장 선거가 지나고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저 두 단어의 무게감이 거짓말처럼 약해졌다. 다이어트라도 한 것인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묻혀 젊은이들의 삶의 무게감은 가벼워졌다. 그에 반해 당선인이 뭘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따위의 따옴표 언론이 언론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선거에서 스윙보터 역할을 한 20대의 목소리는 또 이전에도 그래 왔듯이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남성으로서, 그리고 내 꿈을 위해 이런저런 경험과 공부를 해나가는 한 명의 젊은이로써 젊은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별이 다르고 그 성별에 따른 쌓인 사회적 인식이 다를 순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더 나은 사회 속에서 살고 싶어 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롭고 즐거운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득표율에 갇혀 울릴 이유는 없다. 또 그 득표율이 여태껏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 어떤 게 나에게 이로울지는 오로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나와 함께하는 옆의 친구들과 함께 선택하는 것이다. 정답 역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지, 기성세대가 믿은 정답 역시 우리의 정답은 아니다.


바람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커뮤니티화 그리고 자본주의 매카시즘에 빠진 정치 구호가 사라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20대 스스로 언론과 세상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재수 없으려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지 2-3년 앞에 먹고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 뒤의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의 손이 아닌 나이 든 사람들의 관점으로만 짜이게 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가치를 우리 앞에 놓인 인생에 두고 살 것인가? 기성의 관점이 아닌, 언론에서 떠드는 관점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우리가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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