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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Nov 28. 2021

인스타그램이 없으면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

  욕을 하며 잠에서 깼다. 불현듯 이건 지각이라고 생각했다. 구부러진 이불을 냅다 재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이 몇 시지?' 매트리스 위에 둔 폰을 들어 시간부터 확인한다. 오전 9시 15분. 출근이 10시까지니 금방 준비하면 제때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날짜가 이상하다. 아직 일요일이다. 분명 어제가 일요일인 거 같았는데 왜 아직도 일요일이지? 약을 한 적은 없지만 약을 했다면 이런 기분일까? 멍한 생각과 공간. 내가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무'라는 감각에 몇 초 동안 사로잡힌다. 불현듯 창 안으로 비치는 햇살에 정신을 가다듬는다. 책상 위에는 새벽에 대충 먹고 아직 정리하지 않은 그릇과 젓가락이 놓여 있다. 생각을 정리해 보자. 


  어제는 가장 서러운 토요일 새벽이었다. 아직 해가 다 뜨지도 않았는데 몸 이곳저곳이 떨렸다. 이불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추위가 달아나지 않았다. 몸을 웅크리고 반복된 신음을 내뱉었다. 입술이 마른 채 몸을 굴렀지만 소용없었다. 그 상태로 무려 2시간을 골골거렸다. 동시에 백신 때문에 생긴 몸살이라는 걸 인지하기에도 2시간이 걸렸다.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이러다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이라도 챙겨놓는 건데'라는 때 지난 생각을 반복했다. 며칠 전, 한 언론사 기자가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래, 남에게 일어난 불행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 내가 만약 고통스러운 부작용에 걸린 거라면, 그래서 이렇게 죽어버리면 사람들은 어떻게 내 죽음을 알 수 있지? 출근하지 않아 작가님께 전화가 오면 그제서야 알 수 있을까? 단톡에 며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때 친구들이 걱정을 할까? 

고독사란 이런 거구나...


  인스타그램에 맨날 놀고먹는 친구들과 지인들의 스토리가 올라온다. 고독사를 생각하다 보니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역겨워졌다. 동훈이형이 추천해 준 책의 제목 마냥 인스타그램에 절망 따위는 없다. 다들 아름답고 예쁘고 즐거운, 찬란해 '보이는' 1초를 올린다. 여기 이렇게 아파 죽어가는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는 게 세상인데 인스타그램 속 세상은 늘 즐거움 밖에 없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양진국 부고'를 올리지 않는 한 아무도 내가 죽었는지 모르겠지. 최소한 '나 죽어가는 중ㅜㅜ'를 올려야 내가 아픈지 알겠지.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기쁘고 슬플 때 연락을 해주거나 찾아와 줄 사람은 정말 몇 없음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스토리를 올린다. 무슨 감정으로 올리는 걸까. 미친 것 같다. 나도 주변 사람들도 고작 엄지 손가락으로 움직여지는 세상에 미친 것 같다. 하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취미랍시고 사진을 보정해 올리고, 아픈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글로 정리해 스토리로 올려야지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약간의 다짐을 한다. 술과 음식 사진 따위를 앞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지 말아야지.


  꾸역꾸역 일어나 전기장판과 두꺼운 이불을 꺼낸다. 예열을 해두고 편의점으로 내려간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몸살감기약이라는 약 두 개를 집고는 꿀물과 함께 결제를 한다. 찬 물은 약발이 떨어진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미지근한 물과 함께 삼킨다. 다시 10시간이 지났다. 온몸에 땀이 난다. 이불은 땀으로 적셔졌고 방 안은 땀과 보일러 때문에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나니 몸이 망가진 것 같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한다. 아무거나 냉장고에 있는 걸 집어 본다. 집에서 보내준 사과즙과 어제 아침 산 어묵을 뜯는다. 보이스톡이 울린다. 누구지? 헌이다. 익숙한 목소리가 오랜만에 방 안에 울리고 나도 하루 만에 목소리를 내어본다. 


"어디야?"

"여기 칠레"

"거긴 몇 시지?"

"아침 6시, 한국이랑 딱 12시간 차이 난다"

"지낼 만 하나?"

"아니.. 지겹다. 빨리 내리고 싶다. 니는 어떤데?"

"나도..."


  오랜만에 통화라 1시간을 넘게 했다. 헌이가 항해를 떠난 이후 가끔씩 주고받는 대화는 늘 흥미롭다. 연락을 취할 때마다 세계 다른 지역이다. 브레멘, 뉴욕, 멕시코, 포트 엘리자베스 그리고 이번엔 칠레. 오늘은 서아프리카 베냉에서의 일을 들려주었다. 살짝 무서웠다고 한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정말 책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미개함'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것에서 그런 걸 느꼈는지 알 수 없지만 짐작은 간다. 낯선 세계, 통하지 않는 언어, 우리에게 쌓인 편견과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오묘하게 섞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 인권이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떠들어봤자 겪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헌이는 빠르면 1월쯤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꼭 시간을 내 만나고 싶다. 이상하게 헌이와 대화하면 내 어린 시절의 우울함과 현재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게 된다. 


  창 밖으로 해가 저물어간다. 약기운이 떨어지는지 눕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골든아워가 멋지게 펼쳐지지만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새카만 어둠이었다. 스탠드를 켜자 주광색 라이트가 방 안으로 퍼진다. 주방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어젖힌다. 어둠을 뚫고 새어 나온 냉장고 불빛 덕에 내 방이 마치 어제 본 중경삼림 663의 집과 같게 느껴진다. 2016년에 돌아다닌 대만 길거리가 아직 생경하다. 몇몇의 사건과 몇몇의 인물,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다. 그때 내가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사진을 찍어 기록해 두었을까? 근데 꼭 인스타그램 없이도 우린 사진을 찍지 않았나? 언제부터 피드 꾸미기가 트렌드가 된 건지. 사실 그런 건 큰 의미가 없는데. 돈 벌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쓸데없는 태그에 자기 자신을 숨기고 인스타 속 '나'로 살아가는 걸 보면 세상이 미친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 전 여자친구들의 인스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미친 것 같다. 


  10시가 넘었다. 다시 눕고 싶다. 하루가 이렇게 사라져도 되는 걸까? 어쩌면 내 인생에서 11월 27일은 죽어있던 게 아닐까. 알약 세 개와 물약 세 개 모두 끝났다. 잠에 취한 삶은 영 좋지 않다. 다시 눈을 감아야겠다. 갑자기 교복을 입은 내가 보인다. 열아홉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 내가 서 있다. 지금이 몇 시지? 8시 40분. 등교시간이 헷갈린다. 늦은 걸까? 아니면 아직 괜찮을 걸까? 고등학교 때는 거의 탄 적 없던 택시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급한 마음에 창 밖을 바라본다. 순간, 이게 꿈이라는 걸 느낀다. 


  욕을 하며 잠에서 깼다. 불현듯 이건 지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 일요일을 살고 있었다. 전기장판은 따뜻함을 가진 채 녹고 있었고 이불은 한껏 구겨져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달리기를 하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었다. 옷을 챙겨 입고 창문을 열었다. 에어팟으로 혁오의 <사랑으로> 앨범 전곡을 틀었다. 약간의 스트레칭을 한 이후 조심스럽게 달리기 시작한다. 겨울이라 그런지 억새가 강 위로 가득하다. 비둘기 떼가 무리 지어 비행을 하고 물은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일렁거린다. 나무 하나, 풀잎 하나 이토록이나 아름다웠나? 눈앞에 그려진 일상들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파야지만 꼭 이런 감정을 느낀다. 별 것 아닌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이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돌아본다. 


  어제의 땀과 오늘의 땀이 다름을 느낀다. 설명은 못하겠다. 방구석에 누워 식은땀을 흘린 것과 세상에 나와 달리기를 하며 흘린 땀은 어딘가 다름이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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