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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Jun 18. 2021

나는 지금 과호흡 중이다

열아홉,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맘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3 시절의 나는 몸에 근육 따위는 없었다.(물론 지금도 그리 많지 않다) 배에는 목표하는 대학을 위한 욕심이 있었고 얼핏 봤을 때 그 욕심은 이기심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면 머리에는 당시에 유행도 않던 정치적 올바름이 들어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게 정치적 올바름인지는 몰랐다. 그냥 어리기에, 아직 세상의 때가 덜 탔기에 가질 수 있는 모종의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진보적인 생각은 때로 '그래, 성적이 곧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아!' 따위의 순진한 생각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포항은 교육열이 높은 도시였다. 제철고라는 자사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혹은 포스텍이라는 유명한 공대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교육열을 자랑하는 지방 도시였다.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포항에서 일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 인문계 고등학교는 없었다. 딱 한 군데. 우리 학교만 빼고 말이다. 물론 우리 학교도 그냥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소문이긴 했지만(대체로 우리는 사실로 믿었다) 지난해에 서울대를 한 명이라도 가면 그다음 해는 일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다니던 3년 동안은 운이 좋게도(?) 선배들이 적어도 한 명씩은 모두 서울대를 가는 바람에 일요일 등교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을 이야기하는 건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그냥 내가 교육열이 높은 도시에서 자랐고, 공교육과 사교육 어디에서도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인식을 그 당시에 경험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때 나와 친구들은 유치했다. 4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친구의 슬리퍼를 던져 1층 연못으로 빠뜨리기도 했고, 원바(원바운드)라 불리는 공놀이도 즐겼다. 가끔은 학년부장 선생님이 와서 모든 공놀이를 금지시키는 조치도 취했지만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밖으로 돌아다녔고 몰래 공놀이도 즐겼다. 그리고 정말 유치하지만 경도(경찰과 도둑)도 즐겼다. 사실 초딩 때 하던 경도와는 체급이 달랐다. 거의 잡히면 반 죽다시피 간지럼을 당하거나 괴롭힘(학교 폭력은 아니고...)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날따라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던 경도를 했다. 무려 85kg의, 근육도 없이 살만 뒤룩뒤룩 찐 몸으로 달리고 도망치고 친구를 붙잡으려고 쫓았다. 신나게 뛰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쉬는 시간의 종료를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모두 교실로 뛰어 올라갔다. 


4층에 달하는 계단을 쉼 없이 달리고 교실에 도착하자 곧 청소시간이었다. 친구들은 하나 둘 빗자루를 들고, 밀대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데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핑하더니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어졌다. 할 수 없이 청소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이내 제대로 숨을 쉬기가 버거워 엎드려 있고 싶어 졌다. 하지만 엎드린 것도 잠시 몸에 열이 올라오더니 입고 있던 교복 셔츠가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다. 열도 나기 시작했다. 먼지고 뭐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대로 교실 바닥에 누웠다. 친구들이 하나 둘 이상하게 쳐다보기 시작하는데 천장이 노랗게 변하고 만화에서나 나오는 별이 내 눈 앞에 어른거렸다. 상태가 이상함을 직감한 친구 누군가가 학년부장 선생님을 데려왔다. 웅성거리는 친구들 소리, 먹먹하게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발끝과 손끝부터 시작된 저릿한 느낌과 함께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입이 오그라들고 당황한 친구들의 목소리와 함께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주 살짝 정신을 잃었다. 한 1초에서 2초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들이 나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동욱이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걱정 섞인 목소리였다. 장열이가 내 다리를 주물렀고 세진이가 팔인지 손인지 어딘가를 주무르며 호기심 많은 다른 반 친구들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느껴졌다. 곧이어 아버지가 먼저, 다음으로 119 구급대원이 왔다. 그때즘 나는 거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급대원이 설명하는 대로 손을 모으고 입 앞에 댔다.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셨다. 다시 내가 뱉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셨다. 구급대원은 갑작스런 증상의 원인을 '과호흡'이라고 했다. 산소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마비 증상과 함께 호흡이 불안정한 거라고 말했다. 그날 그리고 나는 바로 조퇴를 했다. 무슨 일이 순간적으로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집으로 돌아와 긴 잠을 잤다. 이따금씩 여러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잠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정말 그냥 한없이 긴 잠을 잤다. 



  


그때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오늘 200km를 뛰었다. 부슬비를 조금 맞았지만 힘들지 않았다. 내 페이스를 알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어디서 더 달려야 하는지를 안다.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아래 지켜진다는 <미생의> 대사처럼 꾸준히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체력을 길렀다. 덕분에 다리와 팔에는 미약하지만 열아홉의 시절보다는 나은 근육을 가지고 있다. 과호흡은 이제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과호흡 중이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내가 원했던 일들이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해왔던 노력들이 어딘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추측하고 결정해서 다시 몸속으로 무언가를 욱여넣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 욕심을 부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믿음을 가진채 소화할 수 없는 산소들을 또 들이마신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자꾸 심리적 과호흡에 말리고 만다. 순간적인 예민함이 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나의 지난 시간들과 노력에 허망한 의심을 품는다. 아주 살짝, 짧은 시간 동안 저 밑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바닥을 치는 순간엔 건강한 생각이 마비된다. 술을 즐기는 유흥가의 모습이 하염없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대외활동이라고 하는 대학생들의 행동이 모두 헛짓으로 보인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가 '그래야 한다'라고 외치는 것보다 '그러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돌아가는데 우리가 백날 움직여봤자 바뀔 것인가? 이런 생각에 마비가 되었다 다시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야 함을 느낀다. 모순적인 방식, 내가 과호흡 했던 러닝으로 다시 호흡을 정상으로 돌린다.


과호흡을 이겨내는 방식은 단순하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뱉는 것. 그리고 꾸준히 체력을 기르는 것. 

나는 내가 꿈꿔왔던 삶을 살기 위해 다시 움직일 것이다. 지난 시간들이 쏟은 노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지난 시간들의 내가 부끄럽지 않은 성공의 초기 버전이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또 도전할 것이다. 그래서 생의 어떤 순간에는 나의 모습을 희생해 축적하고 도약으로 삼을 것이다. 호흡을 고르게, 어떤 순간이 닥쳐도 나를 잃지 않고 목표에 부끄럽지 않게 달릴 것이다. 적당히 쏟아붓고 다시 또 페이스 조절을 위해 적당히 내뱉고. 그래서 나의 수많은 과정들이 결코 과정에 그친 게 아님을, 결과로써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그 어떤 과호흡도 다시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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