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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May 30. 2021

엄마, 미안할 필요 없어

"건후랑 진우 진짜 귀엽다! 나은이는 또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저녁 식사를 하며 찐건나블리의 사랑스러움에 괜한 오버를 떤다.

서로를 챙기고 보살펴주며 함께 나누는 모습이 꼭 이 세상 인류애를 거기다 모아놓은 것만 같다. 

한참 TV를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엄마가 한 마디를 던진다. 


"저것도 다 돈이 있어야 저렇게 키우지... 돈 없어봐라. 해주고 싶어도 못한다.
돈 없으면 저렇게 키워내겠나?"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없다면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꼭 행복을 위해서 억대 연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부모의 가치관,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 육아를 위한 가족 구성원의 노력. 

뭐 이런 보이지 않는 행복의 요소들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나도 엄마의 말에 한 마디 붙인다. 


"그렇지... 근데 또 돈만 많다고 아기들이 잘 크는 것도 아니니까..."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이 필요한가, 아니면 부모의 가치관이 중요한가.

더 이상 이야기를 했다간 소모적 언쟁이 될 것 같아 대충 얼버무리는데 엄마가 다시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서... 엄마가 늘 미안타... 

나도 돈이 많았으면 저렇게 우리 딸하고 아들하고 더 많이 놀고 공부도 시켜줬을 텐데... 

맨날 이놈의 먹고사는 게 바빠가지고 

'진국아 빨리 옷 입어라', '빨리 밥 먹어라', '빨리 안 하고 뭐하노'

이런 말만 했으니까... 그게 늘 미안하네, 아들."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평생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엄마의 마음 한 편엔 늘 나와 누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엄마의 마음에 한으로 맺혀 있었던 걸까.

다시 돌아앉아 엄마에게 그런 생각 안 해도 된다며 이렇게 잘 컸으니까 된 것 아니냐고 괜히 웃어 보인다. 


"그래... 엄마는 많이 못 해줬어도 니는 니 자식들한테는 꼭 잘해주는 부모 되래."


멋쩍은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TV를 본다.  

아빠는 엄마가 막걸리 한 잔 하고는 괜히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다며 농담을 던진다. 

나도 아빠의 농담에 편하게 맞장구를 치고 다시 TV로 눈을 돌린다. 

여전히 찐건나블리가 해맑게 웃으며 돌아다니고 아빠 파추호는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불과 3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이상하게 다시 보는 <슈돌>은 좀 슬픈 것 같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큰 한이 맺혀 있는 걸까. 

그 한을 눈 쓸어버리듯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속으로 엄마에게 위로를 전한다.


'엄마하고 아빠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 엄마.. 안 미안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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