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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May 08. 2021

그땐 왜 아빠의 포터 트럭이  부끄러웠을까?

내가 10살이 되던 해에 우리 집엔 차가 한 대 더 생겼다. 파란색 현대 포터 트럭이었는데 당시에는 그 차가 내 사춘기 시절에 어떤 감정을 갖게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원래 있던 검은색 코란도와는 다르게 파란색 자동차라서 좋았었다. 어릴 때는 색깔이 다양하고 눈에 띄는 게 아무래도 예뻐 보이기 마련이니까.


아빠는 포터 트럭을 한 1500만 원 주고 사셨다고 했다. 가격이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영업용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이삿짐센터를 운영하셨다. 원래 우리 집은 엄마, 아빠가 함께  그릇가게를 운영했었는데 두 분 다 가게에 나가 계시는 시간이 워낙 많은지라 내 머릿속에는 유치원을 갔다 오면 비상용 열쇠를 꺼내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기억이 남아있다. 여튼 그렇게 그릇가게를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오시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부턴 이삿짐 일을 시작하셨다. 누나들의 학비가 점점 더 크게 늘어났고 내 학비도 해가 갈수록 많이 필요했기에 다른 일을 추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자동차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요즘은 이런 숙제가 나가는 순간 엄청난 논란이 인다. 어린이들에게 아직 몰라도 되는 부모의 사회적 계급이나 위치에 대해 알게 하고 친구들 간의 빈부 격차를 확연히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에는 다른 논란들도 많지만 확실한  저런 숙제가 나가는 순간 요즘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나와  가족의 계급 관념을 모르고 넘어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10 때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자동차와 가족의 부유함의 연관성을 중학교가 되자마자 절실히 느꼈다. 그랜져를 타고 다니는 부모님이 있는 친구는  번도 느껴본  없겠지만 가끔씩 아빠가 트럭으로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면  등굣길에 마주하게 되는 친구들의 시선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이 몰려와 일부러 빠르게 차에서 내려 쌩하고 사라진 적이 많았다.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런 마음을 이미 아빠도 알고 있었는지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많은 곳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주곤 했다. 정말 철이 없었지만 그땐  그렇게 아빠의 포터 트럭이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물론 포터 트럭이 우리 사회에서 내포하고 있는 '가난', '노동자'라는 개념 때문에 내가 삐뚤어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은 최대한 아껴 쓰려고 노력했고(사실상 거의 안 쓰는 방향으로) 수학여행을 가도 한 번도 돈을 다 쓴 적이 없었다. 가난을 이기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생각해 성적을 더 잘 받기 위해 교과서를 외우고 문제집을 닳도록 들여다봤다. 일진이라고 불리는 몇몇 쓰레기 같은 놈들이 지들 생일이라고 반 애들에게 1000원씩 거둬 갈 때도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이 그딴 쓰레기들에게 가게 놔두지 않기 위해 시비가 붙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많이 맞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맞아서 아픈 것보다 부당한 것에 쉽게 자존심을 파는 게 더 싫었다. 또 그렇게 싸운 놈 턱 한 대는 갈겼기 때문에 더 괜찮았다.


아빠의 포터는 요즘 과수원을 달린다. 가지치기를 한 가지들을 실어 놓기도 하고 사과 박스들을 나를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생각해보니 수동 기어가 달려 있어 운전병으로 지원하기 전에 내가 그 차로 연습도 했었다. 트럭의 한도는 1톤이지만 그 트럭에 담겨 있던 부모님의 삶의 무게는 감히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시절의 모습들이 거기에 담겨있다. 나는 그런 토양 위에서 자랐고 공부했으며 생각하고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궤도에 도달해 있다. 아빠와 엄마의 모든 것을 존경하며 살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난 그 두 분이 내게 보여주었던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닮고 싶다. 길지 않은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것, 즐겁게 사는 것. 어버이날인데 오늘마저 부모님에게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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