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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Feb 11. 2021

KBS는 왜 수신료를 올리려고 할까?

당신의 콘텐츠는 즐겁나요?

관리비 고지서는 언제 봐도 마주하기 싫다. 내가 쓴 만큼의 공적 이용요금을 내기 싫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 종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게 매달 내야 하는 세금인가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뭘 이렇게 많이 사용했나 라는 자아성찰을 억지로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리비 고지서 한 켠에 참으로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TV 수신료. 1981년부터 변함없이 같은 숫자로 그 자리를 지켜오던 TV 수신료가 이제 슬그머니 그 숫자를 달리 하려는 눈치를 살피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 방송국은 돈이 필요하다. 


방송국은 어떻게 돈을 벌까? 삼성이나 현대처럼 스마트폰을 팔지도 그렇다고 자동차를 팔지도 않는다. 방송국도 하나의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이기에 그리고 그 안에서는 오늘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더 좋은 프로그램과 뉴스를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돈을 벌고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앞서 말했듯이 무언가를 팔아서 남기지는 않는다.(물론 방송 프로그램을 팔긴 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 그리 큰 수준은 아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바로 수신료와 광고. 그중에서도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는 수신료가 수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다. KBS의 경영현황에 관한 한 논문의 자료를 보면 2019년 KBS의 전체 방송매출액에서 수신료는 6705억 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광고수입이 2548억으로 잇고 있다. 약 1조 3000여 억 원의 매출액 중 둘이 합쳐 9200여 억 원이니 굉장한 수치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광고 수입의 꺾은선 그래프이다. 매출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에서 광고 수입은 마치 주식시장의 거품 종목처럼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다.(어쩌면 방송국 입장에선 상장폐지 종목보다 더 무서울지도...) 2012년 6236억 원에서 2019년 무려 2548억 원으로 떨어졌다. 이게 참 묘하기도 한 게 2012년은 갤럭시 S2가 흔히 '벽돌폰'이라고 불리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절대강자를 하던 전성기였다. 또 2013년은 유튜브가 지금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인터페이스와 환경을 구축한 해다. 그러니까 혁신적인 플랫폼과 디바이스가 우리 삶에 녹아든 시점이었다. 즉 디바이스와 플랫폼의 변화가 일상이 된 시점부터 지상파 TV 방송의 광고 수입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광고 수입이 꺾인 시점부터 매출액 중 올라간 건 지역의 SO들과 시민들에게서 받아내는 재송신료와 수신료뿐이었다.


수신료의 가치를 내세우며 공적인 콘텐츠의 제작과 그들의 의무를 위해선 수신료가 필요하다는 KBS. 하지만 떨어지는 광고수입과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방송국은 돈이 필요하다. 높아지는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고 좁게는 JTBC, tvN과 같은 종편채널, 넓게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필적할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그러니 시민들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 그 돈을 우리가 감당해야 하냐고?"


“근데 나는 왜 와 닿지가 않냐?” 


공영방송은 시민에게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재난을 주관해서 보도할 수 있는 방송사가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방송 역시 있어야 한다. 여러모로 그 필요성이 분명하다. 사실 그런 이유로 시민들로부터 정당하게(?) 돈을 거둬가는 것이다. 그런데 KBS가 말하는 연간 예상 적자의 복구와 질 좋은 콘텐츠의 투자를 위한 수신료 인상은 와 닿지가 않는다. 재난 주관 방송사로의 역할은 이미 2014년 세월호 사건 때의 오보처럼 무너진 지 오래고(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지만) 사회 취약계층을 향한 방송과 공적 책무를 하는 콘텐츠들도 썩 떠오르지 않는다.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옆 동네 EBS가 더 낫다는 평이다. 그뿐인가. 예능프로 역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아니라면 화제가 될 것도 신선한 것도 없다. 너도 나도 TV조선의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열풍에 한 숟가락 하고자 하는 진부한 트로트 방송 포맷만 반복하고 있다. <코미디 빅리그>가 코미디 장르와 코미디언들의 연명 줄을 할 동안 <개그콘서트>는 헛발질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더 가관인 건 그나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지역의 KBS 유튜브와 관련한 재정적 지원을 끊겠다고 한 것이다. 돈은 받고 싶은데 제대로 된 리빌딩은 못하겠다 이건가?


보수적인 방송국 문화 덕에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더 좋은 방송을 위한 스태프들의 처우는 과거만큼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계약직과 파견직처럼 가지각색의 비정규직이 난무하고 있고 ‘너 아니면 방송할 사람 없는 줄 아느냐’는 식의 인간을 부품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있다. 심지어 이런 총체적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입사해 지금은 업무시간 내내 커피만 마시는 ‘높은 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덕분에 방송인을 꿈꾸던 주변의 많은 친구, 선후배 역시 방송국을 경험하고는 굳이 그곳에서 일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처럼 방송국 기피 현상이 알게 모르게 저변에 깔리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건 신규채용과 인재의 유출이다. 언론인을 꿈꿨다면 한 번쯤은 들어가 보는 다음의 카페 [아랑]에서는 이제 방송국 기자와 PD 공채가 뜨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한다. 그만큼 새로운 인재를 받아들일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또 익히 알고 있듯이 KBS는 전 분야에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PD들이 종편으로 떠나고 있다. 그들을 돈만 보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들이 원했던 건 돈 이상의 하고 싶은 방송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 사람들의 마음에 더 다가가고 경직된 방송 현장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을 PD들은 원했다.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회사에 그들이 남을 이유는 없었을 테다.


수신료를 올리기 전에 갖춰야 할 건 뼈를 깎는 자성이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이었을까, 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놓친 걸까,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일반 대학생 아니, 일반 시민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생각부터 제대로 KBS는 다시 해야 한다. 혁신이랄 건 찾아보기 어려운데 관습은 그대로 가져가고 돈은 그 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시민들은 더 이상 그런 것들에 속을 만큼 멍청하지 않다. 공정한 보도와 볼 만한 프로그램들이 줄어든다면 무엇하러 사람들이 이토록이나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KBS를 보겠는가. 그런데 더 무서운 건 KBS를 비판하는 다른 방송사들 역시 이 위기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쩌면 방송국 전체의 위험일 수도 있다.


그냥 한 번 생각을 물어보고 싶다. 하루에 TV를 얼마나 보는가? 당신의 하루를 가장 많이 채워주는 콘텐츠와 플랫폼은 어디에 있는가? 나를 예로 들자면 난 유튜브라는 플랫폼 안에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내가 그리고 싶은 삶의 무늬들이 담겨있다. 누구에게는 히죽거리는 웃음의 플랫폼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기록하거나 누군가의 생각을 들으며 삶을 확장시키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유튜브뿐이겠는가.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OTT 역시 사람들의 하루를 채워주고 있다. 분명히 방송국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수신료로 축약된 돈에 관한 이야기는 비단 KBS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방송사들은 KBS와 EBS를 제외하고는(MBC가 공영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거의 광고에 의존한 방송 매출을 가진다. 당연하게도 정파적 특성과 인기 프로그램에 따라 광고비는 다르게 책정될 것이고 그 횟수와 중요도도 달라진다. 다시 말해 추구해야 할 이익에 의해 언론사는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일을 하기 어려운, 방송사는 즐거움을 위해 파격적인 도전을 하기 까다로운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악순환은 타고 타고 내려가 현업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에게는 비정규직의 공고함과 경직된 업무환경으로 돌아가고 시민들에게는 정보의 범람에서 진실된 즐거움과 정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확증의 편향만을 부추기게 만든다. 


방송국들 모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KBS가 수신료라는 이슈로 자충수를 두며 흔들리고 비판받고 있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이 러시안룰렛의 다음 타겟으로 자사가 선정될지 모른다. 당장 몇 달 뒤에 MBC가 될 수도, 채널A(이미 간당간당한 적이 있다)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과 새로운 콘텐츠의 시대에 어떤 방식이 방송국들이 살아남아갈 전략이 될지 도전하고 실패하고 터득해야 할 때다. 


콘텐츠는 즐거워야 한다. 물론 나로서도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유잼' 콘텐츠를 잘 만들지는 못한다. 유튜브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지 못하고 콘텐츠의 기획력도 절대 프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가지고 가는 모토 하나는 콘텐츠는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라는 포괄적인 단어 안에는 보편적인 웃고 떠드는 것 이외에 때로는 나와 비슷함에 공감하고 때로는 너무 평화로워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 감정들이 담겨있다. 사람의 마음에 동화되는 것, 그래서 기억에 남고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는 것. 그게 바로 즐거움이고 미디어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장 밑바닥에 가지고 있어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선으로 보는 미디어의 환경과 세상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미디어를 전공하고 여전히 콘텐츠의 힘이 크다는 걸 아는 한 명의 학생으로서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수신료의 가치는 시민들 스스로 그 즐거움의 가치를 인지할 때 올려도 늦지 않다.     






*참고 논문

오형일, 홍종윤, 정영주 (2021). 공영방송 KBS의 경영 현황과 책무 재설정 : 수신료 정상화 담론

과 방만 경영 담론을 넘어. 방송통신연구

(브런치라도 쓰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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