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제작진의 편지
"영상을 하게 된 이유가 뭐야?'
사람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대답하는 이야기가 있다.
스물이 된 첫 해, 여름을 기억하기 위해 떠난 여행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고,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한 명 한 명 나의 방황을 멈추게 한 보석 같은 사람과 이야기들이었고 그때부터 내 꿈은 그때의 나처럼 삶의 힌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장르, 역할, 돈벌이, 기술, 유행에 대해 입이 닳도록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을 나는 영상으로 여겨왔는데 그 외의 것들에 대해 나는 그들보다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내 길이 어쩌면 영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이 예술 혹은 상업이라고 불리는 판 안에서 살아남기 힘든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TV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일반인들을 만나는 프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 프로를 보자 본능적으로 느꼈다. '내가 찾던 프로그램이 이거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SNS와 미디어 세상에서 조명이 채 닿지 않는 현실의 사람들과 그 이야기들을 조명하는 건 그 자체로 내게 큰 영감이었다. 이게 비단 나의 일만은 아니었다. 대중들도 <유퀴즈>에 반응했고 길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보석 같은 이야기에 웃고 울며 함께 공감했다. 때론 그게 오랜 세월을 산 할머니들이었고 때론 고작 12살 먹은 초등학생이기도 했다. 작은 꽃송이 같은 이야기를 하나 둘 모으자 프로그램은 어느덧 언제나 봐도 좋을 꽃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꽃밭에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됐고 자연히 우리가 좋아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점점 시들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제작진의 노력 덕에 길을 걷진 않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스튜디오로 부를 수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유퀴즈는 한 번도 겪은 적 없던 비바람을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출연 이후, 제작진의 정치적 편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정당의 인물은 출연이 되고 또 어떤 정당의 인물은 출연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째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유퀴즈>가 정치인을 게스트로 데려 왔는가 제작진에게 정치적 편향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 적어도 내가 살면서는 본 적 없던 유재석을 향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출연을 거부당했다고 말하는 정당과 정부의 인사는 tvN과 제작진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유퀴즈>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과 제작진을 향한 사과 요구가 불편하다. 그리고 정치권의 인사들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고뇌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려는 게 거북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보좌진들도 그러할 테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도 그러할 테지만 결국 그 사람들이 <유퀴즈>를 통해 원했던 건 소위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등장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쌓으려고 한 것 아닌가. <유퀴즈>와 유재석,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그 이미지에 편승하기 위해 제작진과 제작사가 불편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일을 진행한 것 아닌가. 누군가는 제작진으로부터 거부 의사를 받았다지만 나는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애정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그 따위 출연 의사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는 선거 기간에만 관심 있는 척하는 이들이 구태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프로그램에 기어 나온 행태와 '쟤네는 되고 왜 우리는 안 되는데!'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모습은 우리 정치가 꼴불견이라는 내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 것 같다.
제작진에게 사과 요구를 한 시청자들에게도 (정확히는 <유퀴즈>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한 명의 시청자이자 시민으로서 물어보고 싶다. '대체 제작진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제작진이 고개 숙이며 진정성을 담은 사과문으로 '저희가 정치적 편향에 빠져 민주당의 인물은 섭외하지 않았고 국민의힘 인물은 섭외하였습니다. 시청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가? 진정 윤석열 당선인을 섭외한 게 제작진의 필사적인 의지였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모르는 너무도 많은 힘과 권력, 자본이 미디어 시장엔 흐르고 있고 제작진 역시 그 비참한 흐름에서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던 게 있었을 것이다. 꽃송이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건 고사하고 작은 웃음도 눈치 보던 현장에서 정말 그 사람들이 정치병에 걸린 방송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오히려 정치에 민감해진 건 보이는 게 전부이고, 모 아니면 도가 되어버린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은 아니었을까. 언제부터 좋은 프로그램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정치라는 관념의 선으로 나뉘어 버린 걸까. 언제부터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죽어도 보기 싫은 혐오의 세상이 되어버린 걸까. 세상의 정말 많은 일들이 일그러진 정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 얼룩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던 우리 곁의 소중한 누군가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유퀴즈>의 제작진이 151회 엔딩으로 만든 영상 <나의 제작 일지>에는 그런 말이 나온다.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땐 고뇌하고 성찰하고 아파했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관성이 아닌 정성으로 일했다"
비록 투박한 영상 몇 편과 그것으로 소수의 사람들과 소통해 본 경험이 전부이지만 나에게도 이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로 우리는 즐거움을 얻고 위안을 가지며 크고 작은 감동으로 내 삶을 돌아본다. 심심찮게 '방송국 놈들'이라며 스스로를 낮추지만 그럼에도 나와 우리 팀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제작진은 존재의 의미를 느끼고 다시금 내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갖는다. 늘 정성으로, 이걸 보는 이들이 그리고 우리에게 소중한 이야기를 전해준 이들이 다치지 않고 고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작진은 지금도 애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유퀴즈>가 이번 일로 인해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만든 이야기 덕에 이렇게 누군가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기도 했으니 말이다. 비바람이 불고 땅이 굳세지듯 쉽진 않겠지만 마음 쓰지 않고 또다시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의 이야기를 담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