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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pr 09. 2022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대만 (하)

펑지아 야시장을 나온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타이중 메인스테이션 근처에 있던 숙소는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에 오밤중 대만에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우리가 타야 할 버스를 확인했다. 


"음... 뭐지? 버스 노선이 안 맞는데?"

"지금 앱이랑 다른 거제?"


난관에 닥쳤다. 

분명 구글 맵이 안내하는 버스 노선은 이 정류장에 있어야 하는데 정작 정류장에는 표시가 안 돼 있던 것이다. 

여기서 더 늦으면 숙소로 가는 길이 험난해질게 뻔했다. 현준이는 구글 맵을 좀 더 자세히 뒤졌고 나는 근처에 있던 우리 또래의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Excuse...me?"


무리를 지어있던 사람들 중, 혼자 조금 떨어져 있던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흰 패딩을 입고 있던 그 여자애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 말이 끝나자 살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물으려고 영어를 연습하던 내 머릿속은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말 그대로 뇌 정지가 왔다. 흰 패딩 탓인지 한없이 하얗던 얼굴은 마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 나온 주인공 션자이를 연상시켰다. 그 여자애의 맑은 눈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떨어져 있던 현준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헤벌쭉 웃고 있던 현준이의 얼굴을 보자 '아 내가 느끼는 지금 감정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거구나' 싶었다. 


여자애의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Shen Li 였다. 

타오위안에서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온 거라고 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대만 고등학생들은 졸업여행을 떠나는데 Shen Li와 친구들도 타이중으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같은 버스를 타게 된 우리는 그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 앞쪽 자리에 앉은 우리는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해하는 그 친구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걔 중에서 자체적으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친구를 골라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Uh.. Where.. are you from?"

"We're from South Korea"


그맘때 10대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그 친구들도 '외국인'인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저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을 쏟아냈다. 여자애들은 FT아일랜드를 좋아한다 했고, 남자애는 역시나 페이커를 외치며 어쩜 그리 잘하냐며 본받고(?) 싶다며 어필했다. 받은 게 있으니 주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나도 대만에 대해 뭘 말할까 싶었지만, 문화적인 거라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밖에 없던지라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던 중, 그 친구들이 현준이에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여러 여자애들이 현준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자연스레 사진을 찍어줘야겠다 생각했다. 이윽고 버스가 타이중 메인스테이션에 도착하자 우리는 다 같이 내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우리 핸드폰에는 배터리가 없어 한 장도 찍지 못했다. 그래도 그 친구들의 핸드폰에 여러 사진을 남겨두었다. 현준이는 한껏 으쓱해진 어깨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를 건넸다. 


"아, 대만 와서 살아야 하나?ㅋㅋ"


타이중을 떠나 우리는 일월담에 도착했다. 

일월담은 영어로 'Sun Moon Lake' 위에서 봤을 때 해와 달의 모습을 한 호수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일월담에 도착한 우리는 어떤 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섬나라 특유의 비 내림과 그로 인한 습기가 호수 주변에 물안개를 만들었는데 그 광경이 제법 볼 만했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있다는 한 장소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주변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걸어서는 무려 1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 역시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려 포기를 하려던 찰나, 한 형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Do you want to go there? I'm going to go there now... How about you?" (자세하진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게 웬 행운인가 싶어 곧장 '쎄쎄'를 남발하며 차에 얻어 탔다. 

조수석에는 형의 여자 친구 분도 앉아계셨는데 우리는 연신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신다' '형이 너무 잘생겼다' '누나께서 정말 미인이시다'라며 생계형 칭찬을 남발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그래도 낯선 우리를 태워주신 배경이 궁금해 형에게 물었다. 어쩌다 우리를 태우기로 했느냐고 말이다. 형의 대답은 작은 감동이었다. 캐나다에서 유학을 했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가 쓰고 있던 한국어가 들리자 왠지 모를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었다고 했다.


나름 감동이었다. 

어찌 보면 지나쳐도 되는 낯선 외국인인데, 그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좋은 한국 친구들 때문에 우리를 도와줬다니 말이다. 괜히 나도 언젠가 한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인연에 편해진 건 몸이었지만 따뜻해진 건 분명 나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대만을 여행하던 며칠간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대만 땅에 내려 작성할 서류를 도와준 것도 홍콩에서 온 누나였고, 타이중에서 만난 Shen Li와 친구들, 펑지아 야시장에서 우리의 메뉴 선택을 도와준 대학생들, 일월담에서 만난 형과 아리산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찍어주며 페이스북 친구까지 한 Coco 누나, 자이에서 길을 물어보자 흔쾌히 차로 우리를 데려다준 어느 직장인 형까지.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있던 낯선 이방인인 우리를 도와줬다. 

단지 여행객이라는 신분만으로 우리는 한결 편하게 대만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국가를 넘어서 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자유로웠던 것 같다.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났기에 일상의 속박이 없어진 것도 한몫했겠지만, 뭐랄까 대만이라는 나라에서 느끼는 분위기에 한껏 올라탔었다. 우리 일상 속에 녹아있던 꼭 그래야 하는 어떤 순응, 규칙, 눈치 같은 것들에서 벗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떠나 오로지 나와 현준이 둘이서만 자유롭게 도시를 즐겼고 새로움을 만끽했다. 길거리를 걸으며 대만 사람들의 아침 끼니를 우리도 먹었고 허름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것저것 시도했다. 대만의 거리를 걸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아도 주변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지금 어떤 것에 끌리고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저 스물 하나에 떠난 이 대만이라는 곳에만 집중하면 됐었다.



여행을 갔다 오면 그런 말을 듣곤 한다.


"너 거기 가봤어?" "그 음식 먹어봤어?"


실제로 사람들이 건네는 '그곳'과 '그 음식'을 많이 다니고 먹기도 했다. 하지만 뭐랄까, 여행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비단 관광이라는 느낌으로만 여행을 기억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증샷과 인생샷 보다는 내가 떠난 여행지가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기억에 남았다. 현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침을 먹으며 색다른 맛에 눈을 뜨고, 그곳의 사람들이 지닌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어설픈 말들로 소통을 이어갔다. 일상적인 골목과 평범한 도시들을 걸으며 미디어가 비춘 대만이 아닌,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대만을 여행했다. 이제서야 그때의 대만을 새롭게 떠올려본다. 어쩌면 나는 놀기 위해 여행한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운 좋게 초대된 것은 아닐까.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그 일상에 초대받고 싶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대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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