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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Mar 14. 2020

성취와 휴식 그 사이 어딘가

난 언제 쉬어야 좋은 걸까?

3월의 산문 #6

  고등학교 시절은 빡빡함 그 자체였다.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났다. 엄마가 감사하게도 차려 준 아침 밥을 대충 먹고 달려가면 간신히 탈 수 있던 스쿨버스는 대략 나를 7시쯤의 학교로 옮겨주었다. 아침은 고요했다. 부족한 잠을 채우는 친구도 있었고 부족하다 싶은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부족한 즐거움을 채우려 올린지 얼마 안 된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는 친구도 있었다. 부족함을 없애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나는 주로 영어듣기와 국어를 공부했다. 제일 만만한 시간대였다. 수학을 풀기에는 머리가 말짱하지 않고 독해를 하자니 귀찮았다. 이왕에 정신이 몽롱한 아침이라면 좀 더 잘하는 국어나 비교적 수동적으로 할 수 있는 영어듣기를 하곤했다.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왜 흔히 말하는 것처럼 바로 직전 수업의 복습을 하고 풀다 만 수학 문제를 붙들고 있는, 그런 일말의 낭비도 허용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쉴 수 있는 합당한 시간은 화장실을 가는 시간이었다. 아니면 학교마다 있는 지루한 선생님의 수업이 끝나 모두들 잠을 잘 수 밖에 없는 분위기여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됐든 그 와중에도 난 압박감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잘난 놈들 모아 놓은 '특반'에서도 조금 더 잘하는 놈이 되고 싶었다.


"네는 그게 고질병이다. 쉬면서 네 시간 가져가면서 해야지."


  성이 특별한 친구가 있다. '사공'이다. 속담 중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할 때 그 사공 맞다. 여튼 사공이 최근 내게 카톡으로 한 말이다. 이것 저것 하려는 내 계획에, 목표에 대고 친구가 던진 말이다. 순간 머리가 요동쳤다. 스무살이 넘어서 그리고 군대를 갔다오고 나서 내가 생각한 내 모습은 고등학교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이겨내야한다, 견뎌내야 한다 와는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날 알아왔던 친구는, 나의 아픈 기억과 힘든 기억도 같이 하는 친구는 내게 여전히 휴식 없음을 꼬집으며 쉬라고 강조했다. 
  친구의 말이 고마우면서 한편으론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주변 모두는 빨간색 없는 내 달력을 보며 쉬라고 말하는데 정작 나는 아직 멀었다며 파란색마저 검은색으로 칠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모습인가.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사진도 찍고 대학에서의 학생회 일도 해야 되며 용돈과 꿈에 대한 투자를 위해 공모전과 장학사업에도 꾸준히 눈길 둔다. 토익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공부도 대충하기 싫고 건강을 위해 틈틈히 운동도 해줘야 한다. 그게 지금 내 모습이다. 휴식을 불안해 한다.

휴식에 어울리는 건 산책이 아닐까.

  나는 언제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언제 여유를 느낄 수 있는가. 나는 언제 스무살의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자유로운 이야기를 또다시 할 수 있는가. 계속 다음과 다음으로 나의 즐거움을 미루고 해야 할 일들을 채워 넣는다. 나태지옥이 아닌 성취지옥에 빠져 허우적 거린다. 잠깐 산책할 시간도,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이야기 할 시간도 아쉬워 한다. 그 시간에 편집을, 그 시간에 글을, 그 시간에 자꾸 할 일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 마주할 수 있나. 시간에 쫓겨 잠시 마주하고 마치 그게 스케줄인 마냥 대하고 즐거운 우리의  이야기도 나의 내일을 위해 미루고 그러면서 어떻게 진정으로 사람 이야기를 하는 PD가 되나. 공모전에 수상한 비평문에는 쿠바의 사람들과 같은 영원한 여유를 우리 삶에서 한 번 쯤 찾아야 된다고 말하며 위선적이게도 나는 그러지 않고 있다. 성취를 위한, 성공을 위한 내 모습에는 역설적이게도 위선과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부정할 수 없는 내 현주소다. 


  쉬기로 했다. 미룰 수 있는 건 미루기로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더 하고, 하고 싶다가도 피곤하면 일찍 잠에 들기도 했다. 12시에 일어나 점심을 아침처럼 먹어도 불안해 하지 않았다. 산책을 했고 코로나19로 뒤숭숭해도 해는 정말 따듯하게 뜨는구나 하며 멍을 때렸다. 지금도 lofi음악과 함께 내 일기 아닌 일기를 이 브런치에 써 보고 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골방처럼 작은 자취방에 모여 술 없이도 각자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알바를 하며 지쳤던 일들을 털어 놓기로 한다.

  나태해지거나 게을러지고자 해서 글을 쓴 게 아니다. (그렇게 들렸다면 안타깝게도 내 글 쓰기 실력이 부족한 이유일 터다) 오히려 성공에 대한 내 지나친 욕심에 대한 경계를 말했다고 생각한다. 성공을 위해 꾸준히 달리는 것처럼 휴식도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식사를 하고, 노을이 지는 것에 감탄하고 따듯해지는 날씨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며 처음 맡아보는 커피 향에도 재밌게 반응하자. 그리고 더 많이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의 눈을 쳐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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