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과 2000년대생
오후 9시. 야근을 마친 성준이 2호선 신림역에 내렸다. 와이셔츠 소매는 주름이 가득 잡혀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바람에 여름 내내 탄 성준의 팔뚝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 성준은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막히지도 않았던 숨통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신림은 늘 그렇듯 시끄러웠다. 길을 걸으면 왼쪽에선 술집의 음악소리가, 오른쪽에선 배달 오토바이의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신림의 이 번화가를 지나쳐야 성준의 집이 나온다. 1년 전, 보증금 1억을 주고 들어간 전셋집이다. 신림은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지방에서 온 성준에게 회사 근처에서 집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동네였다.
딸랑. ‘어서 오세요’라는 편의점 알바생의 인사가 성준의 귀에 가닿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4캔에 12,000원. 굳이 4캔까진 필요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4캔을 고른다. 놔두면 언젠가 먹을 맥주다. 육포 하나와 함께 성준은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땄다. 96년생. 지역 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에 취업했다. 일도 생활도 나름 괜찮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적금, 주식, 코인. 좋다는 건 다 해 봤지만 자산이 모이는 속도보다 물가가 올라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물며 몇 년 전만 해도 4캔에 10,000원이던 맥주도 이젠 2000원을 더 낸다. 무엇보다 당장 세 달 뒤면 전세 기간이 끝난다. 신림만큼 괜찮은 곳이 있을까. 집 찾기에 다시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런 거 보면 편의점 알바생의 젊음이 부럽다. 저 때 차라리 로스쿨을 준비할걸, 아니면 회계사나 법무사라도. ‘뭐든 전문직이면 이만큼 힘들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성준은 맥주를 들이켰다.
오후 9시 반. 나연은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한다. 늘 그렇듯 손님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지나친다. 냉장고를 유심히 살피던 손님이 육포와 함께 계산을 마치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제발 먹고 잘 치워라.’ 나연은 밖으로 향하는 손님을 바라보며 속으로 빌었다. 그제 술을 먹고 난리를 피운 아저씨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알바가 올 때까지 30분. 일을 마치면 곧장 신림역으로 가야 한다. 며칠 전, 신림 근처의 술집에 알바 자리를 하나 더 구했기 때문이다.
2003년생. 나연은 대학교 3학년 대신 휴학을 선택했다. 3학년을 마치고 취업 준비를 하기보단 돈을 모아 여행도 다니고, 진로 탐색도 해 볼 참이었다. 물론 휴학한 지 아홉 달이 다 되었지만, 돈이 모이진 않았다. 작은 원룸 하나도 보증금은 몇천만 원이었다. 저렴한 곳은 반지하 아니면 치안이 위험한 곳이었다. 여행도 생각했던 유럽이 아닌 일본이 다였다. 그것도 남들 다가는 오사카. 재밌긴 했지만, 돌아보니 오사카는 제주도만큼 많이 가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내가 뭐 할지 모르겠다는 게 걱정이다. 고등학생 때는 기자를 해볼까 싶었는데 요즘은 그 마저도 잘 모르겠다. 뭐 할지 모르겠으니 토익이라도 따려는데, 요즘은 토익 900은 기본이고 토스나 오픽도 필수다. 이렇게 걱정이 많아질 때면 밖에서 맥주 마시는 저 손님이 부럽다. 어차피 적당히 살기만 하면, 돈이야 모일 거고 세상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준은 맥주 2캔을 비우고 남은 2캔은 가방에 챙겨 넣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플라스틱/캔’이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캔을 넣었다. 알바 교대할 때가 된 모양인지, 그 사이 새로운 알바생이 왔다. 원래 있던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알바가 새로 온 알바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내일 출근도 있으니 이제 들어가야 했다. 내일은 편의점 대신, 집에서 맥주 2캔을 마시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성준이 문을 열고 집을 향해 올라갔다. 나연은 열린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잡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신림역 방면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르고 내려가는 동안, 편의점 건너편 부동산 가게 주인이 늦은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선 부동산 소식이 흘러나왔다. 드론을 띄워 본 아파트 그림 아래로 자막이 흘러나왔다. “태어나자마자 집주인이 되는 미성년 임대인 역대 최대, 임대 소득만 580억.”
*현실과 상상을 더한 소설타이즈의 글임을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