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건 도무지 완전히
버려지는 게 아니어서

저널리스트가 되어야겠다

by 리얼숲

2025년 6월 12일.

오늘은 찌질한 이야기를 흩뜨려 볼까 한다.


어느 분야건 취업이 어려운 요즘이다. 내가 도전하는 언론 산업도 마찬가지다.

최종 합격 인원이 고작 4~10명 안팎. 적으면 1명을 뽑는 채용에 수백 명이 지원한다.


며칠 전, 8월까지만 도전하고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는, 언론고시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건넸다. 심란하고 막막했다. 2월부터 5월까지, 넉 달에 걸쳐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사태를 겪자 결국엔 기자가 되지 못할 거라는 좌절과 부정이 나를 덮쳤다.


지독히도 모진 생각은 자꾸만 비관을 낳는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 잘 신경도 쓰지 않던 것들이 더 엉겨 붙었다. 예를 들면 나이가 서른인데 아직도 취업을 못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다. 버거웠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건만 은근히 그리고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누구는 돈을 모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누구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고, 또 어떤 누구는 벌써 얼마를 모았다는데, 여전히 생활비를 타 쓰며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런 생각할 필요 없다’, ‘조급해지지 말자’, '남의 인생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는 다짐이 늘 비관을 꺾기 위해 분투했다.


설익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면접을 볼 때면 대체 이런 질문들로 어떻게 사람을 구별한다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예의를 차린 면접자 앞에서 하품을 하는 이도 보았고, 압박면접이라는 타이틀로 비아냥에 준하는 질문을 들었다는 경우도 들었다. 어느 때보다 언론을 혐오하는 시대에 누구보다 언론을 많이 소비하고, 언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며, 언론을 사랑하는 지원자들을 홀대하는 언론사들이 미웠다. 1000자, 1500자씩 빼곡히 작성하라며 건네는 3~5개의 자기소개조차도 채 읽지 않고 들어오는 면접관들을 마주할 때면 나의 진심이 저들에겐 그저 피곤함일 뿐인가 싶기도 했다.


맥없는 불합격 알림이 계속되면, 아무렴 멘탈을 관리해도 충격이 온다. 문제는 한꺼번에 온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엄습했다. 내가 그랬다. 합해서 스물아홉 번이었다. 이 사회에 쓸모없는 잉여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내가 못난 사람인 것은 아닌지, 어울리지도 않는 직업에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선 안 되는데 나의 결핍을 스스로 욕하고 물어뜯으며 부정하는 마음이 새어 나왔다. 실패와 불합격들이 굳은살로 박혀만 있으면 좋을 텐데, 같은 곳을 계속 찔러 상처가 깊어질수록 회복 속도는 느려졌다.


도저히 생각해 봐도 이렇게 계속 삶을 보낼 수는 없겠다 싶어 다짐한 게 ‘8월까지만’이었다. 부모님과 애인은 너무나 아깝다고 했다.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더 아까웠다. (제대로 된) 기자는 세상 모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으며, 다시 세상에 전할 수 있다. 그러면서 개인으로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척 기자라는 명함만을 좇는 아무개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8월까지만’은 어느 누구보다 내가 아까웠다. 또한 내키지도 않았다. 영원히 이 싸움에서 진 것만 같고, 수 만 가지 이유를 대며 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며 살 것만 같았다.


결국에 나를 다시 잡은 건 하필이면, 아니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기자의 글이었다. 6월 11일 자 <한국일보> 이진희 기자의 칼럼에 나온 문장이다.


“하지만 희망이란 건 도무지 완전히 버려지지가 않는 것이어서,
때로 재우고 무시하면서도 어느새 함께한다.”


어떤 문장은 가슴에 박혀 잊으래야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한낱 글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사람을 치유하고 행동에 나서게 한다. 도무지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 나의 희망이 왈칵 부정과 죄책감을 뒤집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다시 다짐을 한다. 기자가 되어야겠다.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기자가 되어야겠다. 아주 훌륭한 기자는 못 되더라도, 제법 괜찮은 기자가 되어 살고 싶다. 저널리스트가 되어 누군가가 간직한 하나의 우주를 전하고, 작은 변화의 실마리를 자꾸만 세상에 던지고 싶다. 기자가 된 이후의 삶 또한 기대와 달리 녹록지 않겠지만, 지금의 다짐을 아로새기고자 한다.


그리고 문득 든 나의 마지막 생각이다. ‘언젠가 내가 합격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걸까?’ 드러내기엔 부끄럽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고 있는가 보다. 나의 합격은 더할 것 없이 기쁘겠지만, 동시에 그 기쁨은 누군가에겐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의 간절함이나 자질, 역량, 성품이 결코 나보다 작고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기자가 된다면, 그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지원자들의 희망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다. 시스템에서 이겨냈다고 좋아만 하진 않고 싶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기자가 되기도 전에 지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면, 언젠가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단숨에는 아니라도 말이다.


“열정과 노력과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주 조금 운이 부족했을 거야.”

동고동락했던 동생이 해준 응원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응어리 진 내 투정을 받아준 이들이 꽤 많다. 응원한다며 쥐어주는 치킨 기프티콘들이 자꾸만 쌓여 간다. 아직 쓰지 않았다. 어떻게 갚아야 할진 알 길이 없지만, 갚아 나가야 할 고마움이 더욱 많아지기 전에 꿈을 이뤄보려 한다. 될 때까지 끝까지 도전에 나서려고 한다. 나와 같은 이들 역시 응원한다. 힘내란 말이 너무나 가볍고 헛헛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대신 힘들 때,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p.s. 이 글은 내가 기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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