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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ug 23. 2020

아저씨, 군대 이야기 좀 그만하세요

내가 이러려고 군대에 갔나

8월의 산문 #2


2018년부터 한 해도 빼지 않고 아저씨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군대 갔다 왔으니까 알 거 아니야?"


고깃집에서 알바를 할 때에도,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할 때에도, 조직생활이란 게 새우깡에 새우만큼 들어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었다. 우리는 군대에서 도대체 뭘 배우고 오길래 고작 2년 채 안 되는 경험으로 변화무쌍한 이 사회를 다 아는 채 생활해야 하는 걸까?


언젠가 군대에서 한 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이나 개인의 감정, 생각, 사상에 대한 자유도가 부족한지. 어째서 우리는 좀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일을 하거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할 수 없는지. 왜 항상 수직적인 위계가 디폴트여야만 하는지. 그 당시의 내가 군대에 있어서인진 모르겠지만 유추해 낸 이유는 바로 '군대 문화'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기업이나 기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성이 많다. (특별히 오늘 글에서 성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 현상으로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은 대체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고 이들의 젊은 시절, 그러니까 10-20대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유난히 독특했던(산업이든, 민주화든 사회 전반에 걸쳐) 70년대와 80년대였다. 선배나 형들로부터 윗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타이틀로 위계를 느끼며 자라왔고 그들이 겪은 군대는 이런 서열문화가 더욱 확고히 되는 공간이었다. 군대를 전역한 후에 사회에 나와서는 똑같이 군대를 전역한 선배들로부터 군대 문화를 답습한 회사 운영방식을 배웠고 그게 옳은 방식인 마냥 여태껏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소위 군대를 갔다 온 젊은 남자들로부터 모종의 기대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다른 게 아니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입은 닫고 생각은 접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형들의 말에는 말대꾸하지 않고 눈치껏 알아서 행동하는 것. 내 후임으로 들어온 친구들에게는 또 똑같이 적당한 눈치를 줘서 튀지 않게 만드는 것. "군대 갔다 왔으니까 알 거 아니야?"라는 말에 이것 말고 무슨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가? 거창하게 "조직이 돌아가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뭐 이런 걸 말하려고 한다면 참으로 위선적이다. 사실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이들의 속내는 자신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고 누가 만든 규칙 인지도 모를 규칙에(사실 규칙이 아닐지도 모른다) 맞춰 딱딱 행동하는 것 말고는 없다.


물론 한국의 현대사에서 수직적인 시스템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적도 많다. 우리가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군대식의 빠르고 획일적인 명령 프로세스가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다른 나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업은 크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국제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수직적이고 딱딱한 위계 사회가 필요한 걸까? 


조금 거대한 담론일 수 있지만 군대는 왜 가는가? 당연히 국방의 의무이기 때문에 간다.(오라고 하니까, 가야 하니까) 젊은 청춘들이 그곳에 가서 총도 쏘고 제식도 배우며 각자의 보직을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수행한다. 혹자는 아까운 시간만 보낸다고 하지만 안전한 나라에서 살기 위해, 그 권리를 앞으로 몇십 년은 누리기 위해 1년 반 정도 되는 시간은 크게 문제 되는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생각보다 현실은 군대식 문화를 배워와 사회에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힌 군대 문화를 더 빠르게 적응하도록 강요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윗사람에게는 예의라는 좋은 말로 포장해 복종하는 것. 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쉽게 또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군대를 갔다 온 이유는 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을 마땅히 지키기 위해서 갔다. 그곳에서 좋은 선후임들을 만나고 생활하며 나의 일을 성실히 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하지만 아저씨들로부터 군대를 갔다 왔기에 으레 기대되는 복종 내지 획일성을 강요받을 때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좀 더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었으면. 그 2년 안 되는 시기로 사람을 보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왜,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으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할 것 같다. 사회가 그런데 한 개인이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군대식의 획일적인 명령 프로세스가 큰 문제없으니 그렇게 해 온 것이라고.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세상은 늘 바뀌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유행과 생각과 흐름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세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가끔은 생각의 틀을 깨어 미처 닿아보지 못했던 생각에 도달해 보는 것도 지금을 살아가는 젊음들이 생각해 봐야 되는 일이 아닐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만 해서는 그저 누군가의 투쟁과 지난한 고찰로 얻은 것들을 도둑질하는 꼴 밖에 더 안 되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나도 해당되는 말이다.



*여담이지만 늘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를 반성하고 또 계획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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