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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약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할 수 있다면

"엄마, 나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

by 쫄쫄C

2023년 7월 7일, 나는 친구와 딤섬을 먹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이 없었다고는 못한다. 이미 아이가 코피를 쏟은 지 2개월이 넘었다. 그래도 '별 일 아닐 거야'라고 믿고 싶었을 뿐.


세 번째 딤섬을 먹었을 때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시경 중 종괴가 발견돼 제거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아니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2시쯤이면 나올 줄 알았던 아이가 3시가 됐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수의사가 그보다 더 오랜 설명 끝에 말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세포검사상 림프종 소견입니다."


어차피 이런 눈물은 못 막는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열심히 울고 나왔다.


나는 왜 네가 아픈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너는 왜 아프다는 티를 나에게 내지 않았을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너를 잃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아, 나 못 죽지. 너 고쳐주고 죽어야지.


머릿속이 무질서했다.






싱가푸라 고양이 이아는 2017년 8월28일 5자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해 11월 낳아준 엄마 홀리를 떠나 내 딸이 됐다. 7년 가까이 크게 아픈 일 없이 잘 지냈다. 매년 봄이면 비염으로 고생했지만, 오뉴월이 되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코막힘이 없어져 편해 보였다.


이번 달부터 림프종 항암 치료를 시작한 싱가푸라 고양이 이아(6세, 여아). 사자 모자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눈이 저런 게 아니고 원래 눈을 세모지게 뜨는 편.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4월부터 코 근처에 핏자국 비슷한 게 보였다. 노상 다니던 동물병원에 가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별게 없었다. 수의사는 "원래 사람도 비염 심하면 툭 치기만 해도 코피 나고 그래요. 비강이 헐어서 그렇거든요. 알러지 주사랑 항생제 처방해 드릴게요." 계절성이 뚜렷하니 그러려니 했다.


코피가 심해지면 병원에 갔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소염제와 스테로이드가 섞인 알약을 먹고 나면 증상이 호전됐다. 맹세컨대 정말 비염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증세가 3개월 가까이 되면서 불안이 찾아왔다. 코피가 안 나던 왼쪽에서까지 선혈이 터지고 나서야 온몸의 핏기가 가셨다. '이거 이상하다.' 곧바로 비강 내시경이 가능한 큰 동물병원을 예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선 '비염이 심해서 피가 자꾸 나는 것 같은데 약을 바꿔보자'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2023년 7월 2일, 보호자 상담부터 하자는 동물병원 원장님 말에 병원을 방문했다. 이아 증세를 쭉 듣던 원장님의 한마디가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다. "한쪽에서만 진행되는 알러지 같은 건 없습니다." 늘 오른쪽에서만 나던 코피였다. 나름대로 생물학과를 6년이나 다녔는데, 나는 당연한 이야기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구나. "종괴가 발견될 경우 수술을 할 수도 있고, 만약 림프종 같은 병변이라면 항암치료가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체면은 얼어 죽을. 쏟아지는 눈물을 무슨 수로 주워 담겠나. 정신을 차려보니 울며 불며 집에는 와 있었다.


그리고 닷새 뒤가 그놈의 중국 만두를 먹던 날의 상황이다. 정신을 못 차리고 "어휴, 우리 고양이 아프니까 나 밥 좀 사줘"라고 너스레를 떨 수 있던 그때.


수술이 끝난 뒤 긴 상담이 진행됐지만, 솔직히 요약하자면 그냥 한마디다. '림프종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항암을 준비해라.'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주의 시간이 있었지만, 사실상 우리의 항암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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