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2일. 우리 이아의 주치의 선생님은 정말 세심하다. 모든 단계의 처치를 상세히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병원 방문 하루 이틀 뒤에는 꼭 전화를 걸어 "이아 상태가 어떠냐"라고 세심하게 물어본다. 솔직히 멍멍이 같을 줄 알았던 항암이 그분 덕분에 좀 편안해진 게 사실이다. 이아야, 나중에 다 낳거든 꼭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려무나.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세심함이 발현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나, 우리 아이의 상태가 꽤나 심각하다는 점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언제 이상 반응을 보여도, 언제 설사와 구토로 고통을 토로해도, 언제 뇌침습으로 하염없이 방안을 서성여도 이상치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세심함이 더욱 고맙고, 더욱 무서운 나날이었다.
다행히 이아는 첫 주 항암주사에 잘 적응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대소변을 소상히 살피던 남편도 며칠이 지나자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2주 차 주사는 마냥 낙관하기는 어려운 주사다. 사실 1주 차 주사는 '준비단계'에 가까운 주사다. 본격적인 항암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토와 설사가 잦고, 식욕부진과 기력저하가 두드러지는 약물이라는 설명을 듣고 또다시 공포가 엄습했다. 우리 아이는 과연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그 고통받는 아이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인가.
2주 차 주사는 맞는 것부터 뭔가 달랐다. 조도를 낮춘 방에 들어가서 사냥감(?)들이 뛰어노는 영상을 모니터에 띄우고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상태에서 정맥주사를 놓았다. 엄빠도 같이 들어가 아이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어주며 안정감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간식을 천천히 먹이는 새 나는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아야, 괜찮아? 이아야, 힘들어? 이아야, 씩씩하네?"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을 10분쯤 뱉고 나니 투약이 끝났다. 수액을 맞으러 처치실로 들어가는 내 딸의 뒤통수를 보자니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이건,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질 리가 없다.
귀가한 이아는 기분이 몹시 나빠보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오심, 오한, 설사, 발열 같은 무서운 증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약간의 기력 저하와 식욕 부진은 있었지만. 이 정도면 정말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감사했다.
이아는 항암치료를 받은 뒤에는 안방 쪽에서 따로 지낸다. 엄마나 아빠가 가끔씩 오가지만,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해 외로운 상태다.
걱정도 병이라, 아이의 컨디션이 꽤나 좋게 유지되자 새로운 불안이 고개를 뽈끔 들었다. '약이 혹시 효과가 없나...?' 세상만사에는 인과가 있다는 게 평소 생각인지라, 당연히 예상됐던 부작용이 없으니 약효 또한 없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잠시 요한의 사례를 들어보자. 생후 9개월인 요한이는 밤마다 몸을 뒤집고 이앓이를 하며 괴성을 지르는 등 엄빠를 부단히도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모두 이런 고통에 감사한다.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는 모든 지랄(!)을 다 하고 있으니 매사가 감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아의 침묵은 어떤 측면에선 공포였다.
<항암치료 2주 차>
체중, 체온, 심박, 호흡을 재고 혈액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은 전주와 동일하다. 이아의 경우 바이털이 안정적인 가운데 여전히 백혈구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림프종 영향일 수도 있고, 왼쪽 귀 중이염으로 인한 만성 염증 반응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향후 수치 변화를 관찰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혈액 내 총 단백량이 높은 수준이다. 림프종의 영향일 가능성, 탈수 가능성 모두 있다. 혈관이 잘 보이는 편이라 팔에 털은 특별히 밀지 않았다.
이아의 2주 차 항암치료 진행 사항과 주의사항.
이번 주사는 빈크리스틴(vincristine)이라는 약제다. 일일초라는 식물에서 유래된 항암제라고 한다. 세포분열에 필요한 단백질에 결합해 암세포의 분열을 저해하는 역할을 한다. 투약 후 가장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은 구토와 설사. 기타 주의사항은 역시 전주와 동일했다.
이번에는 식욕부진이 세게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1주 차, 2주 차 약물로 인한 영향이 한꺼번에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암은 체중빨(?)이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면 간식이든 뭐든 충분히 먹이는 게 좋다. 항암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식욕부진이 심해지고 체중이 뚝뚝 떨어질 수 있으니, 초반에라도 몸무게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 때 이런 거 많이 했는데...
그리고 2주 전에 맡긴 세포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아의 림프종이 어떤 종류인지를 구분해 향후 치료 방향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고양이 림프종은 크게 T-cell 림프종과 B-cell 림프종으로 나뉘는데, 보통 B-cell 림프종이 많고 또 그나마 예후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라지만 솔직히 크게 차이도 없다고 한다. 그냥 어떤 병인지 정확히 알자는 취지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이아는 다행히 B-cell 림프종이다. 그러나 일반 림프종이 아니라 염증성 B-cell 림프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염증 반응이 만성화돼 있어 이차저차 백혈구 수치는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