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9일. 입방정은 떨면 떨 때마다 무조건 악재 당첨이라는 우주의 법칙을 40년 가까이 체득했음에도 또 입방정을 떤 나는 어리석은 즘생이로다. 거울을 보며 '이놈시키, 회초리 맞을 시키'라고 수십 번을 욕했다. 그러면 뭐 하나. 내 새끼가 밥을 안 먹는다는 사실은 변하질 않는데. 항암을 너무 우습게 봤다. 역시 인생은 이럴 때마다 '건방 떨지 마'라며 옐로카드를 든다. 그것도 아무런 예고 없이.
지난해 찍은 이아의 증냥사진.
3주 차 항암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주치의 선생님부터 말씀하셨었다. 열심히 검색해 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 2주간 이아 컨디션이 너무 좋았고, 지치고 지친 내 마음이 '우리 애는 전혀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나 자신을 속였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니 공포가 들이쳤다.
이아는 매주 수요일 항암을 하고 안방에 연금됐다가 금요일에 풀려난다. 이번 금요일 아침만 해도 '오후에 얼른 풀어줘야지. 룰루랄라'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이아가 밥을 좀 덜 먹었던가? 에이, 내가 잘 못 봤겠지! 심심한데 몸무게나 한번 재볼까? 어...? 왜 100g이나 빠졌지? 뭐지, 이거?
3.6kg에 불과한 이아가 이틀 만에 100g이나 빠졌다는 건 70kg 성인이 이틀 만에 아무 이유 없이 2kg 감량됐다는 얘기다. 얘는 아무 이유가 없지도 않다. 항암 중이다. 머릿속이 또다시 눈밭이 됐다.
급히 병원에 연락하자, 주말이 끼어있으니 일단 병원으로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혈액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항암 부작용 중 대표적인 '골수억압'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치상 골수억압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분명 항암이 힘들어 이아가 곡기를 끊은 것은 분명했다. 탈수를 해결하기 위해 수액을 맞고, '잘 먹일 것'이라는 특명을 받고 귀가했다.
그리고 '이아 먹이기 대작전'이 시작됐다. 일단 기존 사료는 쳐다도 안 봤다. 손으로 주워줘도 시러시러. 급히 습식 파우치와 캔 같은 것들을 샀다. 우리 집은 6년 내내 건사료를 먹었기 때문에 습식사료에는 반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않았다. 몇 입 먹는 듯하더니 또다시 분연히 제 자리로 가는 아이.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간식은? 그 좋아하는 츄르를 먹다 말았다. 아, 망했다. 영양제는? 킁킁거리더니 돌아선다. 물이라도 마실래? 물그릇을 가까이 대자 고개를 훽 돌렸다. 야, 물은 나도 물러설 수 없어. 결국 내가 안고 남편이 물약병에 물을 채워 이빨 사이에 흘려 넣었다. 처음엔 찹찹찹 마시더니, 요령이 생겼는지 이빨 사이로 흘려버리기 시작했다. 얼씨구? 그래도 내가 명색이 호모사피엔스인데 너랑 지능 싸움에서 밀리면 되겠냐. 흘릴 수 없는 각도로 물을 분사하자 아이는 분하다는 듯 찹찹 물을 마셨다.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현대의학은 우리에게 '식욕촉진제'라는 보조장치를 줬다. 약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체력이 회복됐을까. 월요일, 드디어 이아는 스스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나도 모르게 수없이 감사했다.
식욕저하는 항암 고양이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문제다. 고양이란 것들이 다 그렇듯이 억지로 먹이려 해 봐야 먹지도 않는다.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제 노력이 가상하지 않으세요? 제발 먹어주세요'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
<항암치료 3주 차>
이번 항암제는 시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 세포독성이 있는 항암제라 빠른 배출이 중요하다고 했다. 핵산 계열의 복제, 생성을 막는 성분이다. 암세포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할 것 같다. (거의 20년 전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의 추정...) 세포독성 때문에 항암주사를 맞은 뒤에 바로 이뇨제를 맞았다. 바로바로 쉬를 해야 대표적 부작용인 출혈성 방광염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아는 다행히 이뇨제를 맞고 병원에서 2차례 쉬를 했다. 귀가해서도 곧바로 소변을 봤다. 혈흔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식욕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예방적으로 식욕촉진제를 처방받아 왔는데 다행이었다. 긴급할 때 먹일 수 있었고, 이후 실제로 식욕이 회복됐다. 다만 가루약으로 받아온 게 패착... 쓴 약이 아니라서 그냥 먹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민보스 이아는 바로 알아차리고 츄르로 가장한 식욕촉진제를 거들떠도 안 봤다. 알약에 넣어 먹이려 했는데 미량이라 넣는 게 쉽지 않았고 제대로 들어갔는지도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알약에 넣어서 투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