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입법이라는 말이 생소한 분들도 있겠지만 쉽게 말해, 새로운 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해당 시점 이전의 과거까지 적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소급(遡及)의 사전적 정의는 ‘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미치게 함’이라는 뜻이네요.
정부가 소급입법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크게 훼손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법이 새롭게 만들어져서 그에 맞게 행동했는데 나중에 법이 바뀌고 소급입법을 하게 되면 나의 올바른 행동이 오히려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일이 계속되면 현재법을 준행한다고 해도 불안하고, 또한 법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신뢰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소급입법이 아니더라도 각종 혜택을 부여한다며 장려했다가 순식간에 정책이 바뀌어 정부 말만 믿고 행한 행동이 자승자박이 되는 케이스도 많습니다. 부동산으로 보면 대표적으로 주택임대 사업자(이하 주임사)입니다. 이들은 17년 12월 발표한 ‘주택임대 사업자 활성화 방안’을 통해 주임사로 등록하면 각종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전월세 시장안정화를 위해 적극 홍보했고 많은 이들이 정부의 말을 믿고 여러 가지 책임사항(의무임대 기간, 5% 임대료 상한 등)을 준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임사로 등록하였습니다.
주임사로 등록한 사람들은 의무사항을 지킴으로서 오는 불리함을 새로운 세제혜택으로 극복했습니다. 세제혜택에는 장기보유특별공제율은 높여주고, 재산세 일부 감면, 취득세 일부 감면, 보험료 감액, 양도세 중과 배제, 종부세 합산 배제 등등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해줘야 사람들이 장기간 임대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유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과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의 태도는 돌변했습니다. 18년 9월에 주택임대 사업자의 혜택이 과도하여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이유로 점점 혜택을 축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임대 사업자들은 분노했고 그들의 분노는 충분히 정당해 보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정부가 9개월 만에 정책을 180도 선회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만약 피치 못할 부작용이 발견되어 주임사 제도의 혜택을 줄여야 했다면 등록 당시와 판이하게 달라진 환경이 되었으므로 임대 사업자들에게 임대 등록 해지 권한을 주거나 적어도 혜택이 줄었으니 의무사항 역시 줄여주는 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사항은 그대로이고 해지를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혜택만 줄여가니 불공정한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혜택을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무사항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인 보증보험 가입비용의 75%를 임대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도대체 그 비용을 왜 임대인이 부담해야 하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법은 통과되었습니다. 여기에 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감정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 비용도 임대인이 매년 내게 생겼습니다. 정부를 믿고 주택임대 사업자에 등록한 사람들은 졸지에 매년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불합리한 모습입니다.
임대 사업자라고 모두가 여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실제로 지방의 원룸 몇 개를 구입하여 임대 사업자를 낸 사람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저금리를 이용하여 대출을 많이 받아 구입했습니다. 이자는 월세로 충당하고 일부 남은 임대료로 노후에 생활비로 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간 수백만 원을 내야 할 판이니 노후생활비를 벌어보고자 정부의 말을 믿고 임대 사업자가 된 자신을 원망하더군요. 사실은 그분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정부를 믿었다는 것 외에는요.
사실 이것저것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실제로 대다수의 주택임대 사업자가 큰 이득을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떤 목적에서인지 주택임대 사업자로 유도하여 많은 임대주택을 양산한 후 의무적으로 세금을 착취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런 경우가 많아지면 향후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정책 신뢰도가 떨어지면 정책의 효과는 더더욱 사라지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시장은 더 혼돈에 빠집니다. 최근 정부의 입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소급 적용하려는 사례가 점점 늘어납니다. 이런 행태에 일부에서는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정부와 국민의 힘겨루기는 계속되려나 봅니다.
하루빨리 편안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훈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