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육십 인생을 살면서 젖 물리 기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첫 시도는 쭈니도 처음, 나도 처음이라 성공하진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만 연습하면 잘 물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부정적인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덮으려 부단히 노력했달까. 신생아들은 젖을 무는 힘이 약해 직수(직접 수유)는 못했지만, 유축기로 유축한 모유를 젖병으로 수유하기도 하고, 또 보충 수유를 위해 분유 수유도 했다.
조리원 신생아실 이모님에게 안겨 맘마를 먹고 있는 쭈니
조리원 모자동실 당시 아빠품에 안겨 맘마를 먹는 쭈니, 그래 너도 젖병을 물때가 있었구나.
젖 물리기를 처음 시도해보는 산모들에게 모유수유란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인 듯하다. 쭈니도 젖을 잘 물지 못하고, 나도 모든 게 서툰 초보맘이었던지라 모유수유가 참 힘들었다. 내게 닥친 시련은 아기가 젖을 잘 무느냐, 못 무느냐가 다가 아니었다. 조리원 생활에 적응이 슬 돼가던 무렵, 가슴에 통증이 찾아왔다. 이것은 넘어야 할 수많은 산 중 하나였다.
병원 마사지실에서 했었던 가슴 마사지가 자극이 되었던지, 가슴에 불편함이 조금 있었는데 여기에 유축이라는 자극과 아기의 빠는 자극이 번갈아 주어지다 보니 유두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곳이 따가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굉장히 신경 쓰이고 불쾌한 느낌이었다.
따끔거리는 곳을 살펴보았다. 살면서 그곳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몸을 내가 살펴보는데도 민망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자세히 살펴본 그곳에는 피부 껍질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옷만 스쳐도 따끔거렸다. 쓰라린 아픔에 당장 모유수유를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불가능했다. 계속 모유수유 연습을 해야만 했고,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서 계속 유축을 해야만 했다. 결국에는 피를 보았다.
상처가 치유될 시간 따윈 없었다. 3시간 간격으로 계속 수유를 하러 갔고, 수유를 한 직후에는 방에 돌아와 젖 양을 늘리기 위해, 또 쭈니가 덜 먹은 젖을 빼내기 위해 유축을 반복했다. 피가 나고 있는 상처부위를 손으로 눌렀다 뗐다를 반복하며 자극하는 상황과 같았다.
유축을 할 때 특히 고통이 심했다. 하루를 꼬박 참아보다가 이렇게 지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조리원 원장님께 당장 SOS를 쳤다. 당시 조리원 원장님이 '모유수유 전문가'였는데 13개월 모유수유가 끝날 때 까지도 내가 경험했던 모유수유 전문가분들 중에서 가슴 마사지 원탑이셨다. '굳이 모유수유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던 나를 모유수유의 세계로 이끈 첫 번째 인물이다.
"원장님, 여기가 아파요.."
민망함 때문에 당시에는 그곳의 단어도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조리원 내의 다른 산모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원장님은 당연한 거라며 나를 다독거려 주셨고, 당연한 과정인 것을 재차 설명해주셨다. 그리곤 상처 치유를 도와줄 연고를 바르라고도 말씀해주셨다.
유두가 갈라지고 찢어져 피가 나는 것을 '유두 균열'이라고 한다. 평생 자극 없이 연했던 피부에 강한 힘의 자극이 반복적으로 주어지면 피부 손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경험하기 전엔 모르는 것이다.
유두균열에 사용했던 크림과 연고
상처 치유를 위해서 바를 수 있는 연고는 '덱스판테놀' 성분의 연고와 '라놀린' 성분의 연고가 있다. 덱스판테놀 성분의 연고는 유명한 '비판*연고'를 사용했고, 라놀린 성분의 연고는 조리원에서 판매하고 있던 '메델* 퓨어란 유두 보호 크림'을 사용했다. 둘 중 100% 라놀린 성분으로 구성된 메델* 퓨어란 크림은 바른 후 닦아내지 않고도 수유가 가능한 제품이라 비판*연고 보다 더 자주 손이갔다.
항상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닦은 후 수유를 했고, 수유와 치료를 반복하다 보니 자주 사용하는 피부에 굳은살이 박히듯 내 가슴도 서서히 치유가 되었다. 무엇보다 조리원에서 나와 유축하는 횟수를 줄이고 직수를 늘려가니 증상이 확실히 빠르게 호전되었다.
혹시 당신은 당신의 유두 모양을 알고있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내 유두가 어떤 모양인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 유두가 어떤 모양인지 알게 뭐람. 하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들에게는 내 유두모양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유두 모양의 종류 중 편평 유두와 함몰유두가 있다. 유두의 모양이 튀어나와 있지 않고 편평하거나 안으로 들어간 모양을 말하는데, 이 두 종류의 유두를 가지고 있다면 모유수유가 좀 더 힘들다. 아기가 잘 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유 전에 유두를 잡아당기거나 굴려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도우고 빨기 쉽도록 피부를 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유두에 자극이 좀 더 주어지다 보니 편평 유두와 함몰유두를 가진 산모들에게 유두 균열이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쭈쭈 젖꼭지'라는 것이 있다. 유두 보호기를 일컫는 말인데, 유두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산모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아기들이 잘 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수유실에서 이 쭈쭈 젖꼭지를 사용하는 산모들을 더러 봤는데, 초반에 몇 번은 사용해 볼 수 있으나 완모 때 까지 사용 할 건 아니니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사용이 번거롭기도 하고 유두 보호기를 계속 사용하고 여기에 의존하게되면 유륜이나 유두가 단단해지거나 부종이 생길 수 있고, 틈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아기가 원치 않는 공기를 마셔 배앓이를 쉽게 할 수 있다.
젖을 물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유두 불편감이나 통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증상이지만 내가 경험한 것처럼 유두의 표면이 벗겨지거나 쓰라린 증상, 혹은 출혈까지 나타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증상일 수 있다. 대부분은 수유자세가 바르지 못하거나 수유의 미숙함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비정상적 증상일지 몰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아기와 합을 맞추며 최적의 수유자세를 찾고 엄마도 수유가 익숙해지면 저절로 좋아지는 증상인 것이다.
유두 균열이 생겼을 때는 꽉 끼는 속옷은 잠시 벗어두고 상처부위가 습해지지 않게 통풍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수유를 하지 않을 때는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될만한 연고를 발라두면 좋다.
모유수유를 하다가 피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 또한 모유수유의 한 과정이었다. 전체 과정을 겪어본 지금, 나의 모유수유를 돌이켜보면 유두 균열은 내가 모유수유를 하면서 넘어야 할 작은 오름에 불과했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조리원 생활 동안 나는 이 오름을 넘으면서 또 한 번 완모의 꿈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