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상-
대숲에 묻은 김치와 무짠지

-생각하는 보헤미안

by 조현수

할머니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시골 할머니 집에 자주 갔었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 집에 가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 할머니 음식 솜씨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대형 마트도 식료품 가게도 없던 시절이라 시골에서는 거의 자연에서 식재료를 구했다. 밭에서 양파나 무도 뽑아서 쓱쓱 닦아서 그냥 먹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할머니의 음식은 무짠지였다.

길쭉한 무~(요즘 단무지 비슷)를 소금에 절여 겨에 묻어두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무짠지를 항아리에 넣어 집 뒤에 있는 대숲에 묻으셨다.

노란색이 아닌 절여진 무가 짜지만은 않고 약간 달콤한 맛이 났던 건 무의 단맛으로 인한 것인지 손녀딸을 위해 할머니가 마법의 재료를 넣었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윤기 나는 흰쌀밥에 올려 입 속으로 넣으면, 아삭하고 시원하면서 달고 짠맛이 입 속으로 퍼지는 할머니 표 무짠지.

항아리와 대숲의 바람 한 줌이 더해져 할머니의 무짠지 레시피가 탄생한 것이다.

겨울이면 대숲에 부는 바람 소리가 너무 을씨년스러워 무서웠는데 음식을 저장하기엔 냉장고보다 더 좋았다.

대숲 바람 소리에 어린 손녀가 무서워 잠 못 드는 날이면 할머니는 항아리에 보관해 둔 달콤한 홍시를 꺼내와 껍질을 벗겨 주시며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냘프고 단아하고 내성적인 할머니는 단 한 명의 관객인 손녀를 위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전래 동화를 많이 듣고 자라나 상상을 많이 하는 아이로 성장한 건 모두 할머니 덕분인 것 같다. 지금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유능한 동화구연가로 활동하셨을 것 같다. 대숲에 부는 바람 소리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로 어우러진 어린 날의 겨울밤과 할머니의 무짠지가 살아가면서 가끔씩 너무나 그립다.

광부 일을 하시다 귀를 다친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잘 보필하셨다.

이른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언제나 어린 손녀를 무등 태워 뒷동산을 한 바퀴 쓰윽 돌고 오셨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닭장에 들어가 닭이 금방 나은 계란으로 달걀찜을 하고 각종 산나물을 뚝딱 무치시고 무짠지와 김치로 아침을 준비하셨다.

너무 조용한 아침상에서 재롱을 부려야 하는 건 손녀인 나의 몫이었다.

조금이라도 귀한 반찬이 나오면 할아버지는 내 앞으로 가져다주기 바쁘셨다. 할머니에게도 좀 다정하게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성적이고 글을 잘 썼던 할아버지는 귀를 다치신 후에는 우울해져 화를 잘 내시곤 했다. 손녀에게만 너그러우셨던 할아버지는 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까지 ‘권학문’에 있는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라는 글과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에 관한 글을 편지에 적어 보내셨다. 그리고 시골의 풍경들과 귀가 안 들려 힘든 삶의 고단함도 때때로 손녀에게 편지지에 가득 적어 보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더없이 소중한 할아버지 손 편지들.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이사하면서 많은 편지들이 분실되어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하다.

그렇게 무뚝뚝한 할아버지도 인정하신 건 할머니의 김치 솜씨였다.

퍼런 잎이 많은 투박한 시골 배추를 소금에 푹 절여 고추 가루와 멸치젓갈과 마늘 청각 등으로 기본양념을 묻혀서 만든 할머니의 김치

그때는 구하기 힘든 굴이나 생새우를 갈아 넣은 기억은 없다.

경상도식으로 산초를 넣어 만든 김치는 향이 독특했다. 어린아이들은 청각이나 산초를 싫어했는데 어릴 때부터 코를 톡 쏘는 향에 익숙해진 나는 지금도 산초 향기가 너무 좋다.

산초 향에서는 왠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의 푸근한 시골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할머니의 음식은 기본 재료 맛에 충실했다.

사찰 음식 비슷하게 딱 들어갈 양념만 최소한으로 넣어 재료 맛이 최대한 살아있는 담백한 음식

어린 시절에 좋게 길들여진 입맛으로 난 우리 한식이 너무 맛있고 좋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을 다닌 까닭에 항상 스스로 음식 솜씨가 너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중년이 되고 보니 음식 만드는 것도, 미각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곁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보고 맛난 할머니의 음식을 먹으면서 생긴 감각들이 내 몸과 기억 속에 슬며시 저장되어 있었나 보다.

이제는 할머니의 음식 보물 창고에서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우리 가족들에게 한식 사랑을 전수하고, 가까운 미래에 나의 할머니가 손녀에게 만들어 주셨듯이 나의 손주들에게도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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