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올리비아 랭
혼자를 즐기는 편이다. 고독함 속에서 자유와 낭만을 찾는다. 특히 낯선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뉴욕이 그랬다. 어디든 사람들로 붐비지만 그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느껴지는, 옅은 회색 빛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는 듯한. 이러한 고독함 혹은 분리됨의 기운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파생된다. 뉴욕은 나에게 꽤 괜찮은 자유와 낭만을 선사했으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예술가들에게는 고독을 표현하고 치유해내는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뉴욕에서 활동한 고독했던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인들이 도시 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표현해낸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고독의 실체가 담겨 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을 둘러싼 고독에 저항하기 위해 소통을 소재로 다양한 예술적 시험을 시도한다. 특히 언어의 양면성에 관심을 갖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녹음하는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 둘 외에도 내게는 조금 낯선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헨리 다거와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고독과 연결 지어 풀어낸다. 이들은 고독을 실체화하기 위해, 혹은 자신 안에 있는 고독을 몰아내기 위해 예술 활동을 했다. 그렇게 이 외로운 도시에서 고독을 체험한 예술가들을 통해 많은 것들이 탄생했다.
7명의 예술가에게는 고독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이들 모두 아동학대, 동성애, 에이즈 등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결국 ‘고독’이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저자 올리비아 랭을 통해 ‘고독’이라는 교집합으로 묶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삶이 꽤 비슷하게 느껴졌다. 책 후반부로 가자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들의 외로움이 만들어 내는 무게가 내겐 꽤 버겁게 느껴졌다. 답답해지는 느낌이 부담스러웠고, 책에 대한 흡입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이 책에서는 각각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외로움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나의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것을 탓하는 것이 빠르겠지만, 몇몇 대표 작품을 제외하곤 어떤 것을 설명하고 있는지 바로바로 확인하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작품을 확인하며 책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나는 완벽한 고독을 위해, 그 순간만큼은 디지털과 멀어지고 싶었다. 저자가 주창하는 혼자됨의 가치를 열심히 실천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데는 독이 된 듯하다.
사람은 환경에 물든다. 자신도 모르게 함께 있는 사람의 말투를 따라 하게 되고, 머무는 장소의 분위기에 스며든다. 이 고독하고 범상치 않았던 예술가들이 뉴욕의 외로움에 물들었을 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외로움 속에서 마음 전체에 깊은 상처를 드리웠고, 외로움 속에서 탄생시킨 작품을 통해 치유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생기 넘치는 캘리포니아에서였다면, 그들의 작품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평가를 받게 되지 않았을까?
서평 <이희연 / 리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