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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Feb 16. 2018

사랑은 정의가 가능할까? :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

러브 온톨로지 - 조중걸


<러브 온톨로지>는 한 가지 물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바로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다. 사랑의 말들이 범람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질문이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대답을 내놓는다. 그들은 사랑을 겪어 보았기에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답을 듣기도 전에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많은 것들이 사랑이라 말해지지만 사실 그것들은 집착, 광기, 자기 파괴 등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혹은 알면서도 떠들어대는 말잔치에 불과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것들을 조중걸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애정, 섹스, 결혼이다. 다정함, 배려, 관심 등의 애정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어쩌면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사랑은 아니다. 게다가 인과로 엮이기에 문제가 된다. 섹스를 조건으로 애정을 구하는 순간, 섹스만이 남는다. 결혼의 대가로 애정을 제공하면 결혼만이 남는다. 인과율의 틀로 세 가지를 결부시킬수록 사랑은 멀어지고 물질적 교환으로 귀결된다. 만남은 취향에 따른 목적지향적인 거래로 전락하고 사랑이란 말은 무색해진다.



책에서는 사랑이 다른 것으로 혼동된 원인을 인간의 욕심으로 지목한다. 인간의 허영이 별개인 것들을 하나로 생각하게 했다. 실증 가능성에 집착하는 인간들은 모든 것을 지성의 틀로 재단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고 사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대로 낭만주의자들도 책임이 있는데, 애정, 섹스, 결혼에 실제 이상의 숭고함을 덧씌워 사고를 마비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흔한 사랑의 소음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게 됐다. 더 최악인 점은 아는 척하는 자들의 부정확한 추측에 의해 사랑이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사랑은 본래 오늘날처럼 쉽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일상처럼 친숙한 것이 아니다. 경험할 수 있을지, 경험한 것인지도 말하기 어렵다. 사랑은 물리현상이 아니어서 증명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단지 목격될 뿐이다.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사랑을 지향함이야말로, 우리의 불완전한 언어로 최대한 근접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그 어떤 목적이나 동기가 없을 때 사랑이 된다. 물론 증명되어질 수 없기에 사랑이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나는 여기 있다.


만약 <러브 온톨로지>의 논리가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세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철학 문제를 다룰 때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현학적인 문체다. 철학 서적이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오독할 가능성도 높다. 둘째는 당신이 이미 애정, 섹스, 결혼 중 한 가지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어서 일 수 있다. 하지만 조중걸은 그것들이 나쁘다고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사랑이 아닐 뿐이다. 무언가의 우월이나 열등을 구분 짓지 않는 것이 그의 미덕이다. 비판하는 지점은 그것들이 사랑으로 오도될 때 생기는 기만들이다.


마지막으로 온도에 대한 오해다. 책의 부제가 왜곡에 한몫했다. 이 책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뜨겁다. 저자의 중심 사상을 안다면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그가 공부한 비트겐슈타인 사상에 따르면, 사랑을 비롯한 인지의 영역 밖에 있는 담론들은 침묵해야만 하는 주제다. 그럼에도 조중걸은 사랑에 대해 탐구한다.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고 주저하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그것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을 향한 관심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신념을 꺾고 자기모순을 감내하면서까지 사랑에 대해 믿고 싶어 하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사랑이 아닌 것들에 보이는 그의 반응이 비교적 더 냉담하게 느껴지는 것일 터이다.


조중걸이 <러브 온톨로지>에서 시도한 작업은 사랑의 해부가 아니다. 그도 말했듯, 사랑은 정의가 불가능하다. 그가 논리의 탑을 쌓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의 비논리성이다. 당신이 아름다워서, 돈이 많아서, 지위가 높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기에, 당신은 나이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에 숭고함 같은 대단한 가치는 필요 없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동어반복이고 순환논리지만, 사랑은 거기에 있다.




by.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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