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 김훈
2011년 1월, 상병 때, 나는 중대장으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군견병 해볼 생각 없나?”
“저는 개를 싫어합니다.”
“지금 주인이 없어서 벌벌 떨고 있어서 그래, 네가 잘 훈련시키고, 맡아서 도와줘.”
군대 때 내 보직은 탄약 수급병이자, 보병이었기 때문에 군대 내의 임무수행이 애매모호하였다. 그리고 군견을 돌볼 사람이 없었던 찰나, 나에게는 군견을 돌볼 기회가 생겼다.
그 군견은 군대 내의 계급으로 치자면, 중사였다. 그 군견의 이름은 ‘바렌’이었으며, 또한 나이도 인간의 나이로는 70대의 노쇠견이었다. 나는 한참 후임이었다. 계급으로나 나이로나. 그런 중사 군견을 훈련시키라니. 말이 안 됐다. 그리고 나는 개를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첫 대면 날, 그 군견은 사납게 짖어대었다. 내가 두려움의 눈빛으로 군견을 바라보니, 나를 노려보며 짖기 시작했다. 그 군견은 짖다가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였다. 기침을 하면서 군견의 입가에는 침이 묻었고, 눈곱이 끼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눈가의 눈곱과 입가의 침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 군견의 눈가는 계속 나의 얼굴을 향했다.
새벽의 순찰 임무가 떨어져서, 어두운 산길의 철조망을 걸어가면서, ‘바렌’ 에게 이것저것 힘든 일들, 속상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안 힘들어? 바렌?”
“왈왈왈~~~ 깨갱...”
아직까지도 그 짖다만 신음소리를 기억한다. 그 군견은 자기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 높은 산을 올라가서 순찰을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맨날 산을 오를 때마다 턱까지 차오르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순찰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렌’ 은 그런 나의 힘든 모습을 안쓰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전역 전 날, 정기적으로 가는 심장사상충 주사를 맞으려 군 병원을 갔다. 그곳에서 군의관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어우, 이 친구, 얼마 못 가겠는데?”
“바렌, 많이 안 좋습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음... 우선은 경과를 지켜보자고.”
심장사상충 주사를 맞고 나서, 돌아오는 길, 뭔가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저번의 ‘바렌’ 이 바라보았던 그 눈빛처럼 내 눈빛 역시 그러하였다.
전역 신고를 하고, 바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바렌’ 은 짖지도 않았다.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렌, 소시지 줄까?”
근데 웬일인지 소시지를 먹지 않았다. ‘바렌’ 은 나와의 헤어짐을 아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렌, 잘 있어. 또 놀러 올게.”
그리고 얼마 후, 2012년 중순에 바렌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뭐랄까. 그때 기분은 참 묘했다. ‘바렌’ 이 나를 바라볼 때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눈빛과 행동, 참으로 신기하다. ‘동물도 사람과 같구나.’라는 것을 그 날 이후로 깨달았다.
<개>를 읽으면서 ‘보리’와 ‘바렌’ 이 오버랩이 되었다. 개가 바라보는 인간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가 바라보는 인간은 ‘참 가난한 발바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개가 주인으로 향해 달려갈 때, 발바닥이 헤질 정도로 뛰는 것처럼, 인간 역시 발바닥이 해질 정도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리’ 역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은 인간답게, 개는 개답게, 각자 태어난 순리대로 사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개>의 주인공 ‘보리’ 역시 앞으로 어느 주인을 만나 살아가게 될지, 혹은 떠돌아다니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안개 속이란 것을 작가 김훈 은 말하고 싶은 것이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어딘가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열심히 발바닥이 해질 정도로 뛰고 있을 인간과 개들을 위해 ‘오늘도 수고했다.’라고 전하고 싶다.
서평 <홍지훈 / 리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