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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May 25. 2018

피하고 싶던 내 모습과 마주하며,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지난 몇 년간, 나는 '어차피 이어질 인연은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이 간편하면서도 무책임한 아이디어는 철없던 어린 시절 겪은 몇 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당시 나는 원하는 게 생기면 미친놈 마냥 앞뒤 생각 없이 달려들곤 했다.


당연하게도 원하는 건 가질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꽤 많은 민폐만 끼쳤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주변에 피해만 주었던 나는, 그동안의 행적들에 대한 뒷감당이 두려웠고 실연당한 영화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며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어디로든 도망치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사랑 - 실연과 민폐 - 도망'의 한 주기가 끝나면, 내가 민폐를 끼쳤던 사람들 중 몇몇은 내 밑바닥까지 보여줄 수 있는 (혹은 더 이상 보여줄 밑바닥이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는데, 이렇듯 민망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행복 회로를 돌려 얻어낸 결과물이 바로 ‘어차피 이어질 인연은 이어진다’인 것이다.


이렇게 간편하면서도 무책임한 아이디어는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던 작년 가을에 화룡점정을 찍게 되는데, 어차피 붙을 기업은 붙는다는 생각으로 남들 반에 반도 안 되는 양의 자소서를 쓰고도 면접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탓에 (그전까지는 잘 나가다 갑자기 하락한 영업이익,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 등등 이유는 많았다)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어디든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취업을 위한 더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보내던 와중에 지인이 ‘네가 읽으면 좋을 것’이라며 추천한 책을 읽게 된다.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같은 유혹적인 말에 넘어가 책을 펼쳤지만, ‘너는 특별하지 않다’, ‘너는 선택이 초래할 결과를 두려워하기에 절대 의미 있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니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되는 이유는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위의 말로 시비를 걸어왔다.


모든 문장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책을 다 읽었지만 저자의 어떤 말에도 토를 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피하려고 하던 나의 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실, 난 원하는 것은 꼭 가져야 하는 막내이며 책임지는 것이 무서워 항상 도망치기만 하는 겁쟁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땐 버림받는 게 두려워 먼저 상처를 주고 도망쳐왔다. 내가 준 상처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몰랐고 그저 세상사가 그런 것이라며 합리화하기 바빴다. 자소서를 써낼 때도 다르지 않았다. 서류전형에서 떨어져 내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 최소한의 시도만을 했고, 그 마저도 실패했을 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코 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제부터 나는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 물론 이런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수십 번은 여자에게 차이고 나름대로 공들인 자소서들이 이면지가 되겠지만, 더 이상 핑계를 찾지 않을 것이고 실패가 무서워 도망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책이 나의 모자람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서평 <김요셉 / 리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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