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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Jun 19. 2018

나는 책을 읽고 싶다.

화씨 451 - 레이 브래드버리


우린 벽면 TV에 둘러싸인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다. 


소설 속 도망자들이 세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숨기고 다니던 손바닥 tv는 역설적이게도 지금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넋을 빼놓는 벽면 TV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손바닥 안에서 새로운 풍경과 상상의 세계를 접하고 지구 저편에서 방송을 하는 누군가와 역할극을 벌이기도 하며 우리는 온전히 손바닥 안 세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제각기 손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화면 속 현실에 빠져 맹목적으로 길거리와 계단 위를 질주하는 사람들. 지하철 객차, 엘리베이터, 화장실에서까지 어딜 가나 손바닥 안에 갇힌 사람들 투성이다. 나는 그들 앞에 존재하지만 그들이 과연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지나가는 길에 놓여있는, 보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의식의 수준까지 갈 필요도 없는 무의식의 돌덩이 중 하나 정도이지 않을까. 돌덩이 취급에서 받는 묘한 안도감과 더불어 마치 밀드레드처럼 멍하고 생기 없어 보이는 그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고요히 홀로 책을 읽고 서있자니 마치 '몬태그'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전혀 나에게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그 행동들이 나에게 "당신은 왜 흐름에 동참하지 않지?"라고 묻는 듯하다.


살아오는 동안 여러 책을 읽으며 책은 우리의 인생을 구체화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책에도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파고들수록, 읽을수록 번잡해진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뻔한 진리들이 수많은 언어와 어투, 비유로 범벅이 되어 페이지마다 엉겨 붙어 있으며 어느 책을 읽어도 마치 새우탕면에서 물씬 풍기는 새우향같이, 하지만 결코 혀로 맛볼 수 없는 그 상상 속의 새우 같은 진리의 향기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빤한 과정이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들을 읽고 계속 만들어내며 한 곳에 고이 쌓아 놓는다.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는가, 지혜가 늘어나는가, 위안을 받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선 쉽사리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읽을수록 혼란스럽고 더 큰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대체 왜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일까? 대체 왜? 


언제나 따라붙는 근본적이고 책이란 존재만큼이나 더 고뇌에 빠져들게 만드는 질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싶다. 그리고 계속 읽을 것이다.


소설 속 사람들은 책을 읽고 나서 생겨나는 고뇌, 피어나는 걱정, 상념들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기에 방화수를 만들어내고 책들을 불태워 버렸다. 인생에서 평생 방황하는 인간은 다양성과 기억, 불확실의 연속, 온갖 모순이 존재하는 책 속에서도 정처 없이 헤엄친다. 언젠가 뭍으로 가는 방향을 찾으리 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서. 기계의 발전, 생산성의 비약적인 발달, 세상이 발전할수록 파생되는 풍요로움과 여유를 가지고 '클라리세' 같은 삶을 누리는 것이야 말로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향하는 미래는 점차 그것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상상력과 생각이 가로막히는 세상이다. 물론 21세기의 핵심인 단순, 효율성, 편의와 대척점에 서있는 방황과 혼란,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독서라는 행위를 사람들에게 퍼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의미에서의 방화수가 절실한 세상이다.



서평  <조남웅 / 리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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