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물리학에서 엔트로피(Entropy)는 흔히 ‘무질서도’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아주 정직하게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가만히 두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지러워진다.
질서 있는 상태란 생각보다 훨씬 특별하다. 그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 아주 드물게 선택된 배열에 가깝다.
반면 무질서한 상태는 너무도 평범해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쉽게 도달한다. 그래서 아무런 개입이 없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특별함’을 놓아버리고 ‘평범한 무질서’ 쪽으로 기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것이 ‘엔트로피(Entropy) 증가 법칙’이며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에 의해 물리량으로 정의되었고, 루트비히 볼츠만이 확률과 경우의 수로 해석하여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신비한 자연법칙'이 아니라 '임을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은 쪽으로 향하는 '통계적 필연'임을 증명하였다.
우리의 일상도 결국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책상 위 서류 한 장이 비뚤어지는 순간 주변이 금세 흐트러지고, 잘 정리해 둔 방도 며칠만 지나면 어느새 삶의 소용돌이를 닮은 듯 어수선해진다. 정리는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해야만 존재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들이지 않으면 질서는 유지되지 않으며, 작은 무질서가 점점 커져서 결국 전체의 분위기와 형태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흐트러트린다.
나의 일상이 자꾸 흐트러져버리는 이유는, 내가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냉정하리만큼 정직하기 때문에, 질서는 선택이고 노력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질서는 당연하게 늘어난다. 그래서 삶에서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엔트로피에 저항하고 있는 것임으로 쉬운일이 아니다. 기꺼이 이를 감수해 내야만 우리의 일상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이야 말로 행복한 상태인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과 시덥잖은 일상을 주고받고 월급으로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 지나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만나는 좋은 책 한 권, 맑게 개인 어느날을 한가로이 즐길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때론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내가 에너지를 써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낸 소중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진다"는 허무함이 아니라 "유지되는 것은 모두 내 선택의 결과임으로 무엇을 지켜낼 것인지를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사실이다.
집중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성실함은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의미는 방치된 삶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하루는 흐트러지고, 의도 없이 살면 삶의 방향은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용기 내어 감정을 설명하고 멈추어 삶을 돌아보고 관계를 위해 애쓰고 살아간다. 동시 다발적으로 흩어지려 하는 모든 것을 지켜내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왜 인지도 모르겠는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매여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방전되어 지쳐쓰러지기 십상이다.
그럴 땐 "지금 나는,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로 질문을 바꿔보면, 내가 애써 지켜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진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선명하게 발라내었다면, 그 다음은 나의 에너지를 집중해서 지켜내야 한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피곤하게 굴지 말자.”
서로의 사소한 것들마저 한없이 궁금하고 귀엽고 멋져보여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사소한 것들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귀찮고 피곤해지면 우린 종종 그렇게 말한다. 물론 시시콜콜하게 모든 시간을 서로에게 매여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외면이 무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닌거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이였다면 귀담아 들었을테고 모르는 사람이였다면 피곤해도 예의를 차렸을텐데, 사랑한다면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이해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오해로 많은 사소한 것들을 이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냥 지나치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수고가 생략들 되는 순간들이 쌓이면 관계는 어느새 이전의 질서를 잃고 우리는 이별의 방향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기분은 설명하지 않으면 왜곡되고, 마음은 다루지 않으면 굳어진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무질서로 향하는 방향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걸고 마음을 쓰는 것이며, 이러한 질서가 희귀한 상태라서 사랑을 더 사랑답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만든다. 무의식적으로 숨쉬듯이 사랑하게 될테니까.
흩어지려 하는 세상의 흐름을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다.
작은 말투, 작은 친절, 작은 기다림, 작은 배려.....
이 사소한 모든 것들이 관계의 질서를 지켜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정성을 들이는 작은 한 걸음이 삶이라는 시스템 속 엔트로피를 낮추고, 나의 하루에 다시 질서를 불어넣는다. 무엇을 지켜낼것인지 분명하게 결정해야 하며, 지키기로 결심한 것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사소한 행동이야 말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태도이며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법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