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만리 떨어진 R007은하에서 우주선이 날아왔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외계인은 인간 땅을 처음 밟았는데, 그곳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테헤란로는 빌딩 숲을 이루었으며, 대기업이 쌍두마차처럼 이끌고 가는 경제대국.
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먹게 되는 한국인의 매운맛! 그에 더해 갖가지 치킨과 피자, 족발, 보쌈은 먹고싶을 때면 언제든지 배달해 먹을 수 있다.
그뿐인가. 이제 두유노우?를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은 한국을 안다.
처음에 외계인은 이곳에 정말 잘 정착했다고 생각했다.
정도 많고, 탈도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혼은 언제 해?"
"아이는 왜 안 낳아? 못 낳아? 안 낳아?"
"왜 그런 직장 다녀요?"
"그 나이까지 뭐했니?"
"그러다 인생 진짜 큰일 나."
"직장을 옮긴다고요? 직업도 바꾼다고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오히려 가족보다 더 나를 챙겨줬다.
(그렇지만 정작 진짜 가족은 부스러기처럼 흩어져있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특히, 나 외계인이 관찰한 결과, 이 나라에서는 나이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고,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들은 서로가 속한 집단 사이에서 비교하고, 깔보고, 부러워하면서 함께 보이지 않는 깃발을 잡기 위해 달려나갔다.
또한, 같은 나잇대의 초반, 중반, 후반이 해야할 일들로 기준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인생을 세모, 네모, 동그라미 틀에 억지로 끼워 맞췄다.
어떤 사람들은 꼭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울퉁불퉁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울퉁불퉁해도 괜찮아.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나라는 외계인이 하는 말을 이 세상 사람들은 번역하지 못한다.
모양이 다른 이들은 버티고, 버티다 언젠가 폐기처분된다.
듣기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고 했다.
이 땅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외계인인 나도 팔과 다리를 잘라서라도 도형 틀에 맞춰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잘라낼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아무리 맞춰도 끼워 맞춰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갔다.
사람들은 다 함께 달려야 한다고, 달리지 않으면 뒤따라오는 투명 괴물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 잡아먹히나 안 잡아먹히나... 그대로 있어볼까?'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섰다.
따라가지 못한 이들은 젊은이고, 노인이고 겁에 질린 채 곧장 그 자리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문득, 고개를 올려 밤하늘 너머에 빛나고 있을 고향별을 생각했다. 그리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이 세계는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것처럼 순순히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 숨쉬면서 고향별로 돌아갈 것이라고, 투명한 괴물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우리를 사라지게 만들려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