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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sontobe Jan 08. 2018

실리콘밸리 소소썰; 3탄

워라벨 in 실리콘밸리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에 워라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워크 앤드 라이프 벨런스 (Work and life Balance)라는 말의 약자로, 말 그대로 일과 가정을 어떻게 조화롭게 유지할 것인가? 에 대한 개념입니다.

"당신은 맨날 일일일!!!"하는 어머니의 신경질 적인 잔소리와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일하는데!!!"라는 아버지의 분노한 대답에 익숙했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개념이지요.


제가 실리콘밸리 기업에 입사하기 전, 한국기업에 근무할 때에도 물론, 가정의 날, Family day 등 워라벨을 위한 제도들이 존재했었고, 많은 회사들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가족의 중요성, 일과 삶의 양립 등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의 워라벨은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일 지라도, 실제로는 그 접근에 있어 많이 다릅니다. 간단히 이야기해보면, 한국에서의 워라벨은 "회사를 최우선으로 열심히 일하되, 그렇다고 가정을 방치하지는 말아라."의 수준이라면, 실리콘밸리에서는 "가족이 최우선이다."가 그냥 깔려있는 명제이기 때문에 워라벨이라는 트렌디한 약자를 써가면서 워라벨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 Time with family (kids), not availeble for meetings (가족과의 시간이라 어떤 미팅도 할 수없습니다.)


- Get kids home, fed and put to bed (아이들 픽업, 먹이고, 재우기)


- Drop off kids (아이들 등교시키기)


- WFH (Working from home, 재택근무)


위에 있는 내용들은 실제 저희 회사 전체 공개 캘린더에 올라와 있는 미국 본사 직원들의 일정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회사 전체 공개 캘린더에 위의 내용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릴 수 있을까요?


작년 여름, 저희 회사에서 개최했던 임직원 여름 파티에는 당연히, 임직원뿐 아니라, 가족들이 초대되었습니다. 가족들을 초대하는 회사 행사는 한국에서도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때 제가 놀랐던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죠.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끼리 팀을 짜서, 누가 제한된 시간 내에 2층에서 계란을 떨어뜨렸을 때 가장 안 깨지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경쟁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눈을 가리고 간식으로 가득 찬 말 모형을 터뜨리는 온전히 아이들만을 위한 게임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가리고 간식 목마를 터뜨리는 게임 중입니다. 진행자는 저희 Co-founder Dylan이구요 ^^

아이들은 어른들 노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묵시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행사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는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저희 회사 여름 파티의 분위기 입니다. 참 자유 분방하죠? 참고로 가운데 모자 쓰신 분이 저희 CEO 입니다.


그렇다고 실리콘벨리 기업이 한국기업에 비해 여유롭고, 일을 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 (밤 10시, 11시) 경에 필요하다면 한국과 회의를 하기도 하고, 이메일을 쓰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보고서를 쓰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미국의 다른 기업들에 비해 실리콘밸리는 그 업무의 빡셈으로 악명이 높기도 합니다. 다만, 그 포기해야 하는 것이 개인의 휴식이나, 사교가 아닌 가족과 관계된 일이라면 "Family comes first (가족이 최우선이다.)"라는 원칙을 존중하고 고수하는 것뿐입니다.


회사의 아주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저희 아들이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망설이다가, 어쩔 수없이 미안해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내가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랬더니, 정말이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장이 그러더군요. "Min, Family comes first. Go and take care of hime, we will take care the rest. (민우, 가족이 최우선이니 어서 가봐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렇게 대답을 해줄 때, 1초의 망설임이 있고 없고는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바라보면, 어떤 경우에는 제도와 원칙으로 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 때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해야 한다."라는 규칙으로 열린 소통이라는 문화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적어도 제 경험으로 문화는 절대 규칙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법은 최소한"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듯이, 규칙은 이미 만들어진 문화를 지키지 위한 것이지,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진정한 "워라벨"을 어떻게 한국 사무실에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저희 직원들과 함께 고민 중입니다. 그 첫 번째 회의에서는 극단적 자율주의자와, 그렇게 하면 회사가 운영이 안된다가 팽팽히 맞섰는데요. 재밌게도, 극단적 자율주의자가 저였고, 회사가 운영이 안된다고 걱정하는 것이 대다수의 직원들이었습니다. ^^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트렌디하고 유행한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워라벨이 망가진 상태였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취직할 때쯤이면, 워라벨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지는, 가족과 개인의 삶이 최우선으로 존중받고 인정받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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