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무사고인데 보험료가 100만 원 이라고요?
자동차 보험 가입을 하다가 멈췄다. 이것저것 할인을 넣었는데도 보험료가 100만 원이 넘는다. 이상했다.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무사고로 운전을 해왔다. 출퇴근, 출장, 장거리 운전,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까지. 사고 한 번 없이, 늘 조심하며. 10년 무사고 운전 경력이면 보험료는 꽤 낮아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이유는 '차량이 본인 명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나는 늘 운전석에 있었지만, 기록 속에는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회사 법인 차량을 몰았다. 차는 늘 내 손에 있었고, 키도 내가 관리했고, 운전의 결과(도착, 지연, 피로, 긴장)도 모두 내 몫이었다. 하지만 서류 속의 이름은 언제나 회사였다.
책임은 내가 졌고, 명의는 다른 이름이 가졌다. 운전은 분명 내가 했는데, ‘내가 운전했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은 네이버 지도 같은 앱에서 안전 운전을 하면 인증을 해주고 보험료도 할인해준다고 한다. 나도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조건이 붙었다. '차량이 본인 명의여야'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10년 동안 안전하게 운전했지만, 그 안전은 ‘증명할 수 없는 안전’이었고,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시스템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시스템은 명의를 보고, 사람의 시간을 보지 않을 뿐이다.
나는 최근 8년 동안 일한 회사를 떠났다. 회사명부터 법인 등록까지 손수한 자식같은 회사였다. 회사를 떠나게 된 과정은 가슴이 아팠지만,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법인 명의로 리스한 차량은 리스 기간이 끝나고 개인 자금을 가수금으로 넣어 인수했다. 리스가 끝나고 새 차로 바꿀까 잠시 고민했지만 정든 차였다. 퇴사를 하면서 내가 몰던 그 차를 가수금 반환 대신 현물로 인수하게 되었다.
내일이면 명의 이전을 한다.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차량이 생긴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차를 갖게 된 기쁨보다는, 이제서야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동안 나는 분명히 살아왔고, 일했고, 움직였고, 책임졌는데 막상 서류 앞에 서니 나는 거의 ‘경력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운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 이름으로 일하고, 조직의 타이틀로 움직이고, 법인 명의로 계약을 맺는 동안 개인의 이름은 늘 뒤에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쌓인 경험, 판단, 감각은 분명 내 것이었지만 기록되는 순간에는 종종 다른 이름이 앞에 섰다.
우리는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사라는 사건 앞에서 그 구조는 아주 개인적인 공백으로 돌아온다. 내가 했던 일들이 내 이름으로 환산되지 않는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퇴사는 회사를 떠나는 일이 아니라 내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비싼 보험료는 어쩌면 수업료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차도, 일도, 선택도 모두 내 이름으로 남기겠다는 선언 같은 것. 서류 한 줄로 지워졌던 시간들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그 시간은 여전히 내 몸에 남아 있고, 내 판단에 남아 있고, 내 방식으로 운전하는 손끝에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 이름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조금 늦었을 뿐, 처음이 아닌 시작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법인 차량 운전 경력도 경우에 따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운전직'일 경우다. S사 기준으로 나는 내 후년부터 무사고 할인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