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 24km의 하루
아이들은 봄방학 중이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자고 있던 2호님이 오늘 하루만 쉬면 안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방학이 없어. 학생이 아니잖아.' '엄마 회사에 직원이 없어?' '응 엄마 혼자야. 그러니까 엄마가 쉬면 회사 전체가 다 쉬는 거야.' '하루만 쉬면 안 돼?' '설 연휴 내내 잘 쉬었잖아.'
설 연휴 동안 하루에 10km씩 걸으며(의도치 않게) 복잡할 수도 있던 잡생각들을 버렸다. 잠깐 떠올리고 없애버리고를 반복했더니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누가 출근하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거의 출퇴근 용으로 쓰는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은 한 달에 한 번 가득 주유를 한다. 주유하면 세차를 2천 원 할인해 주는 주유소에서 가득 넣고 한 번 씻어내고 나면 한 달은 차가 더러워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멀리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거나, 내리막길일 때 굳이 액셀을 밟지 않아도 되는 때에 계기판에 화살표가 'charge'가 되는 순간이라던지 빽빽한 공영 주차장 친환경차량 자리에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15분의 연비 24km를 확인한 순간이라던지 8시 50분에 기업 입주 공간에 모여 계시던 환경 미화 이모님들이 설에 만들었다며 시원한 식혜를 챙겨주시는 순간이라던지 이런 루틴의 순간순간이 내가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을 준다.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집 앞 마트에 내일 아침거리나 간식거리를 사서 나눠 들고 오는 30분, 세탁기 돌려놓고 깜빡했는데 퇴근하고 오니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정갈하게 갠 옷들,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해도 눈에 힘줘가며 운전대 잡고 있으면 입에 쏙 들어오는 귤 한 조각.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이런 소소한 것들이다.
물론 사업가로서 원대한 목표가 있고 비전이 있다. 우선순위에 집중하다 보면 소소하게 놓치게 되는 것들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한다. 당연하다 여기는 일상 루틴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런 루틴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고자 한다면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시작만 하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게 밀어주는 환경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요즘 나의 힘이다.
설 연휴 끝나고 출근하자마자 여성 기업 확인서가 나와서 연휴 직전 현장 면담하면서 힘내라고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신 심사관님 생각하니 내가 참 복 받았구나. 그렇게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니 주변에서 손을 거들어 주시는구나. 마음이 뭉클하다.
다시 내가 만든 루틴으로 돌아와 저 방향으로 오늘도 한 발 또 한 발 남들에게는 느릴지 몰라도 내 속도로 꾸준히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