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

왜 어떤 관계에서는 늘 버텼고,어떤 관계에서는 숨이 편해졌을까

by 리블럼

요즘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 누굴 피해서도 아니고, 상처가 덜 나아서도 아니다. 그냥 조용히, 나 자신을 다시 정렬하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어떤 관계에서는 늘 긴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한 것 같은데도 편안했을까?”


같은 나였고, 같은 능력이었고, 같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관계에 따라 내가 너무 달라졌다. 관계가 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맡은 역할이 나를 바꾸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관계 속에서 조금 더 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생각했고,
조금 더 챙겼고,
조금 더 버텼다.


그 ‘조금’들이 쌓여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걸 책임감이라고 불렀고, 능력이라고 불렀고, 프로페셔널함이라고 믿었다. 나는 ‘지탱하는 사람’일 때 가장 많이 소모됐다.


어떤 관계에서는 일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됐다. 상대의 불안을 먼저 감지하고, 상대의 흔들림을 대신 정리하고, 상대가 무너지지 않게 내 몫을 조금씩 내어주었다. 그 관계에서는 내가 일을 잘해서 인정받았다기보다, 내가 계속 버텨주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반대로, 숨이 편했던 관계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장 편안했던 관계들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스스로 관리했고, 불안을 토로하기보다 상황을 설명했고, 나에게 위로를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 상황은 이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결정은 부탁드립니다.”

그 관계에서 나는 누군가를 달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를 대신 살아주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판단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때의 나는 가장 차분했고, 가장 정확했고, 가장 나다웠다.


나의 프로감은 어디에서 왔던 걸까? 나는 오늘에서야 조금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많은 ‘프로감’은 완성된 구조 안에서 발휘된 능력이라기보다, 불안정한 구조를 혼자 받치며 생긴 긴장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항상 한 발 앞서 있었고, 항상 대비하고 있었고, 항상 무너지지 않게 조정하고 있었다. 그건 능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도한 역할이기도 했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그 따뜻함은 일의 도구가 아니다. 이건 스스로에게 가장 늦게 한 인정이다. 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맥락을 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업무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반드시 소모됐다.


정서적으로 기대는 관계에서 나는 늘 ‘지탱자’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해도 결국 나만 남아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어떤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지


나는 감정을 맡기지 않는 사람과/역할이 분명한 구조 안에서/판단만 요구받을 때/비로소 숨이 편해진다.이건 차가워진 게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은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관계를 선택할까?


이제 “같이 버텨요”라는 말보다 “이건 내가 할게요”라는 말을 믿을 것이다.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구조 안에 나를 두는 선택을 할 것이다.


마치며.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해 관계를 돌아보았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는 더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덜 애써도 괜찮은 관계에서 가장 나다워진다는 것.


이제는 그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삶을 설계하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관계는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단단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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