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행과 나를 알아가는 길

율곡 이이의 말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

by 리블럼

율곡 이이는 인생의 세 가지 큰 불행을 말했다.
소년 등과, 너무 이른 성공.
중년 상처, 너무 아픈 상실.
노년 빈곤, 너무 늦은 결핍.

그리고 누군가 그 위에 덧붙인 말이 있다.
“평생의 불행은 나를 모르는 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그냥 멋있는 말로만 들렸다.
그때의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생이 굴곡을 만들고, 관계가 흔들리고,
회사도, 가정도, 몸도 마음도 한 번에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나를 안다’고 했던 말이 얼마나 어리고 가벼운지 알게 된다.

나는 중년을 이제 막 시작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겪었다.
누구에게는 조용한 이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삶 전체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큰 선택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매일 내 안의 바닥을 본 시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엄마, 직책, 누군가의 딸…
이름표가 나를 대신 설명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이름표들을 하나씩 떼고 나니
남는 건 아주 작은 ‘나’였다.
작아서 더 소중했고, 그래서 지켜주고 싶었다.

율곡의 말처럼, 사람은 때로
너무 일찍 성공해도 불행하고
너무 늦게 가난해져도 고통스럽고
중년에 사랑을 잃는 건 뼈를 깎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불행은
사실 “나를 몰랐던 시간”이었다.
남을 챙기느라 나를 잃어버리고
역할에 갇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것.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나는 나를 자주 들여다본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보다
브랜드를 크게 만드는 대표보다
먼저 ‘나’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작은 행복에도 반응한다.
단풍이 예쁘지 않다는 말이 많은 해였지만
내 눈엔 충분히 아름다웠던 그 산의 풍경처럼,
내 삶도 멀리서 보면 꽤 괜찮아 보인다.
조금 덜 화려해도, 흐린 날이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알겠다.
인생의 불행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나를 모른 채 살아가는 불행만은
이제 다시 겪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는 지금 익어가는 중이다.
천천히, 묵직하게, 나다운 방향으로.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