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고, 일단 뛰어봤다

첫 마라톤

by 리블럼

멜버른에서 생활하던 시절 알게 된 동갑내기 홍석 씨는 요즘 러닝에 푹 빠져 있다.


내 바디프로필을 본 그는, 한 번쯤 원하는 몸을 가져본 소감이 어떠냐며 효과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방법을 물어왔다. 그러다 말미에 덧붙였다.


“러닝도 너무 좋아. 한 번 뛰어봐.”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가벼운 대답이었는데, 몇분 뒤 그는 내년 4월에 열리는 기장 오션뷰 마라톤 링크를 보내왔다. 실행력이 있는 사람들은 늘 이렇다.


코스도 좋고, 날씨도 선선할 것 같은 날짜. 다만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신청할 수 있는 건 4km 슬로 조깅뿐이었다.


그렇게 새벽 운동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슬로 조깅을 신청했다. 스토리에 올렸더니, 미화가 비대면 마라톤이 있다며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어제는 겨울이 맞나 싶을 만큼 날이 따뜻했는데, 오늘은 부산 바닷바람이 절정이다. 뛰다 보면 덥겠지 싶어 옷도 얇게 입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손수건을 꺼내 목에 둘렀다.


사랑하는 더원짐 앞에서 출발해 낙동강변도로를 따라 다대포까지 8.3km. 산타의 루돌프가 아홉 마리라서 이번 마라톤의 코스는 9km다. 남은 700미터는 다대포해변공원을 한 바퀴 돌면 딱이었다.


러닝에도 클래스가 있다더니, 뛰는 법을 모르니 초반에는 정강이가 아프고, 4km쯤 지나니 장요근이, 그다음엔 엉덩이가 아프다. 계속 뒤처지던 미화는 결국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고, 나 역시 무작정 뛰기엔 버거워 페이스 7~8km의 슬로 조깅으로 속도를 조절했다.


춥다, 춥다 하면서도

강변을 따라 뛰는 사람들은 있었고,

센터에서 함께 운동하던 숙경 언니와도 우연히 마주쳤다.


사전 조사 없이, 말 그 그대로 무작정 부딪힌 첫 마라톤.


바람에 시야를 가리며 날리는 머리는 후드로 수시로 고정했고, 레몬즙을 탄 물이 든 가방은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결국 전부 쏟아내 버렸다.


가방이 가벼워지자 흔들림이 사라졌고,

몸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5km쯤 지나자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뛸 수 있는 지점이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호흡이 안정되었다.


다대포에 도착해 한 바퀴를 도는데, 거리가 그대로였다.

핸드폰을 들고뛰다 멈춤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아유… 다시 시작을 누르고 400미터를 더 뛰었다.

완주 기록은 9km, 1시간 10분.

처음엔 3시간쯤 걸릴 거라 예상했던 러닝이었다.


이 기록이 빠른지, 느린지는 모르겠다.

비교해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속도로

정해진 목표를 향해 뛰었고

그걸 해냈다.


마라톤이 인생 같다는 말이 있다.

무작정 부딪히고, 시행착오에 적응하며 뛰다 보면 결국 나만의 속도를 찾게 된다는 것.


바람이 많이 불면 어떤가.

준비가 덜 되었으면 또 어떤가.


나는 뛰었고,

그리고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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