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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Sep 22. 2023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장비병'

소비요정은 언제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오늘도 출근해서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있다.

어제 와이프가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 때문이다.

"양말도 중요하다며?"

그렇다. 나는 와이프가 큰 의미 없이 던진 한 마디에 아침부터 양말 검색을 하고 있다. 컴프레스포트, CEP 등 러닝 전문 양말 브랜드의 웹사이트를 들락날락한다. 와이프는 나를 '소비요정'이라고 부른다. 물론 귀여움에 대한 표현이 아닌 조롱이 가득 차 있다.


나는 환자다.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등의 질환이 있다.

질환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쩌면 '불치병'처럼 느껴지는 '장비병'도 있다.


장비병은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보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길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은 나와 조우할 생각이 없었다. 학창시절엔 살이 안 쪄서 문제였고, 누구보다 공으로 하는 운동은 잘하는 축에 속했다. 만날 축구하고, 농구하고, 돌아다녔다. 대학 때는 군대 때는 물론이고 1년 동안 휴학하고 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하면서 60kg 때의 몸무게가 돼 있었다.


그런데...

장비병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근검절약이 철저하게 체화된 부모님과 달리, 어린시절부터 나는 뭐든 그렇게 사는 게 좋았다. 티끌 같은 걸 사서 태산을 만들었다면 오히려 다행일까. 나는 브랜드, 유행 등에 굉장히 민감한 스타일이다(그런데 왜 몸은 이렇게 방치해뒀는지 나로써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명품 브랜드를 사모으는 건 아니지만, '알만한 사람들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제품'을 사는 게 철칙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장비병은 스포츠와 연결되면서 그 증상을 더해갔다. 골프를 치기 시작하면서 골프 의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히려 클럽은 타이틀리스트 풀세트로 마련하고 오랜 기간 쓰고 있다. 하지만 옷은 매년 '알만한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는' 제품으로 사들이고 있다. 제인린드버그가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에는 제이린드버그에 꽂혔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입기 시작하면서 전통의 RLX(폴로 랄프로렌의 스포츠 라인), 갤빈 그린, 스코티 카메론 등을 기웃거린다.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골프처럼 어쩌면 퍼포먼스에 직결되는 장비인 라켓에는 큰 관심이 없다. 디자인과 평판이 무난한 윌슨 클래쉬 초기 모델, 한 때 정말 좋아했던 도미니크 팀이 애용한 바볼랏 퓨어 스트라이크를 수년쨰 유지 중이다. 옷은 얘기가 또 달라진다. 하루는 황소 마크가 그려진 나이키 신발, 바지, 티셔츠, 모자를 입고 라파엘 나달이 되고, 또 다른 날은 아식스 신발에 라코스테 상하의를 입고 노박 조코비치가 된다. 


장비병이 실력 향상으로 연결된다면 변명거리라도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골프도 그렇고, 테니스도 그렇고 내 실력은 그저 스포츠를 즐길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제품 검색할 때의 열정이 도무지 필드 위, 코트 위에선 발현되지 않는다.


누가 달리기는 돈이 안 든다고 했던가. 나도 처음에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소비요정, 장비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달리기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러닝화를 검색한다. 유튜브에서 2023년 러닝화 리뷰하는 콘텐츠를 죄다 시청한다. 두 켤레를 구매했다. 헬스장에서 하나, 야외에서 하나가 필요하니까...


러닝화를 샀더니 옷이 마땅치 않은 느낌이다. 역시 아직 뛰기 전이다.

'알만한 사람들만 알만한' 제품을 검색해본다. 비싸다...

여기선 타협을 했다. 뉴발란스와 나이키에서 제품을 구매했다. 대중적인 브랜드로 양보를 했지만, 그래도 뉴욕마라톤 한정 티셔츠와 드라이핏 ADV 제품으로 일말의 자존감을 높였다.

아 까먹은 게 있다. 물론 러닝과 직결된 건 아니지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스마트워치도 샀다. 기존에 갤럭시워치를 갖고 있었지만, 뭔가 자극이 필요했다. 가민의 피닉스7 프로를 거금 129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와이프의 분노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달리기 시작을 앞두고 장비병 치료를 위한 주사를 듬뿍 맞은 셈이다. 아마도 러닝을 본격화할 수록 장비병 증상은 또 발현될 것이다. 제발 장비병과 함께 달리기 성과도 함께 발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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