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소설
병원을 둘러보고 배선실에 다녀온 금희에 따르면 병원장은 끝까지 어떤 대화나 사과도 거부했다.
노조는 밤을 새워서라도 대타협을 하겠다며 기다렸지만 이날 새벽 3시까지 이어진 막판 협상에도 병원장은 안 나타났다. 결정권자가 빠진 상태에서 노사 간 입장차가 좁혀질 리 없었다.
결국 노조는 총파업을 시작했다.
단체 교섭을 계속하자는 입장에 병원은 답이 없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과 분만실처럼 멈추면 안 되는 곳과 환자들의 밥을 담당하는 식당의 노조원은 일단 대부분 제자리를 지킨다는 소식이었다.
“1층 로비가 아수라장이야. 노조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더라. 왜 병원 안에서 이러느냐고 환자랑 보호자들이 화가 나서 따지고 난리야.”
금희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은 말없이 TV를 지켜봤다. 화면 속에서는 빨간 ‘접근 금지’ 띠로 로비 중앙을 둘러막은 노조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돈벌이 의료 중단하라! 중단하라!”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아니다!”
“공공 의료 실천! 투쟁!”
노조원들은 ‘단결 투쟁’이 새겨진 빨간 티에 ‘공공 의료’라고 적은 하얀 피켓을 들고 흔들었다. ‘비정규직 철폐’라고 흘려 쓴 빨간 띠를 이마에 두른 사람, ‘임금 동결 NO!’란 피켓을 든 사람도 여럿 보였다.
카메라는 눈을 감고 수납 창구에 앉았거나 귀를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추다, 불안한 눈빛으로 노조원들을 바라보는 휠체어 탄 남자에게 멈추었다. 두 다리에 흰 붕대를 감은 노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불편한 환자였다.
“평소에는 간호사실에 얘기하면 휠체어를 밀어 주는 사람이 바로 왔는데, 오늘은 검사 시간이 다 돼도 안 와서 내가 이 불편한 몸으로 직접 휠체어를 끌고 왔습니다. 근데 검사도 한 시간이 넘게 더 기다려야 한다네요? 내가 이 병원을 10년째 다녀요. 6년 전 파업 때도 휠체어를 밀어 줄 사람이 없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땐 6일 만에 끝났어요. 이렇게까지 파업을 하는 노조도 이유가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정말 너무 힘듭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삿대질을 하는 중년 남자도 보였다.
“공공 의료 실천, 좋아하네! 결국은 월급을 올려달라는 소리잖아, 아니야? 떼거지로 몰려와서 환자들이 불안하게 병원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이게 니들이 말하는 공공 의료냐? 수술한 환자들한테 마음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이러다 내 아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니들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온몸이 바싹 마른 암 환자의 인터뷰도 이어졌다.
“…결국은 아픈 사람들을 볼모로 이러는 거 아닌가요? 공공 의료를 외치는 저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왜 안 보이는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요? 당신들이 자리를 비워서 한 명의 환자라도 잘못된다면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거예요.”
대한대병원 노조의 파업은 뉴스에서 길게 다룰 만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심상치가 않았다. 양의 몸뿐 아니라 병원에도 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금요일, 어수선한 기분으로 양은 일찍 깼다. 지나치게 조용한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청소하는 정 여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안 왔다. 몸무게를 재는 간호사도 안 와서 금희와 양이 체중계를 가져와 직접 몸을 달았다.
새벽같이 찾아오던 인턴 의사도 늦었다. 국회로 가자고 외치던 20대 인턴 의사의 얼굴은 하루 사이에 10년은 늙어 보였다. 파마머리를 질끈 동여맨 인턴은 양의 히크만에서 피를 뽑다가 실수로 흘리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또 나왔다.
5일 전에 처음 발견한 뒤로 3번째였다.
지금까진 화장실 변기에 떨어져서 확인이 어려웠지만 이번은 달랐다. 회진을 기다리며 침대에 앉은 양의 아래로 뭔가 쑤욱 빠지는 느낌이 났다. 살그머니 속옷을 내려 보니 생리대에 새끼손가락만 한 검붉은 덩어리가 있었다.
양은 얼른 비상벨을 눌렀다.
달려온 간호사 옆에서 금희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서성였다.
“저, 이런 거 본 적 있으세요?”
양이 덩어리가 놓인 생리대를 내밀자, 손전등 간호사는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니오. 이런 건 처음 봐요. 주치의 선생님께 보고하고 실험실에 보내서 분석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는 투명한 용기를 가져와 덩어리를 넣어서 가지고 나갔다.
뭐지?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주치의는 알지도 몰라. 덩어리를 본 원석이 뭐라고 할지… 양은 궁금했다.